박간재 전남취재부장 |
부모, 자식간 이별도 서러울 일이지만 형제간 이별 역시 가슴 아픈 일이다.
10여년 전 취재차 들렀던 나주 옛 주막 '율정점(栗亭店)' 역시 슬픈 이별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형제간 이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어서다. 현재 나주 동신대 인근으로 조선시대 때는 밤나무골로 불렸다. 목포 방면과 강진 방면에서 올라오는 길과 서울로 가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 지점에 있는 큰 주막이다. 술밥을 먹고 하룻밤을 잔 뒤 서울과 목포, 강진 방면으로 떠나던 곳이다.
1801년 11월5일. 찬바람 일던 해질 무렵 지친 기색의 두 형제가 주막으로 들어섰다. 한양에서 천릿길을 걸어오던 차였다. 두 형제의 이름은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신유옥사(1801년)로 형은 완도 신지도에서, 동생은 경북 포항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 해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서울로 불려 올라 갔다가 무죄로 풀려나던 날 곧바로 귀양길에 오른 것. 두 형제는 하룻밤을 울음으로 지샌 뒤 다음날 형은 신안 흑산도로, 동생은 강진으로 유배의 길을 떠났다. 이 날이 두 형제가 이승에서 본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밤 울며 이별의 슬픔을 읊었는 데 그 시가 바로 '율정별(栗亭別)'이다. 18년 뒤 귀양에서 풀려난 다산이 이 곳을 지나면서 또한번 형 생각을 하며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취재하면서 나주 율정점이야말로 강진 다산초당보다 더 유서깊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지자체에서 관심을 갖고 관광상품화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사를 더 썼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민선8기가 시작됐다. 코로나19로 갇혔던 전 국민들이 새로운 의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태세다. '책상머리 행정' 말고 이런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을 발굴해 선보인다면 이보다 더한 관광지가 또 어디 있겠는가.
박간재 기자 kanjae.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