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데스크칼럼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 입력 : 2022. 09.15(목) 14:49
  • 서울=김선욱 기자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전쟁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권 이야기다.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휴대전화 메시지가 포착됐다. 보좌관으로 부터 받은 문자에는 "백현동 허위사실 공표, 대장동 개발관련 허위사실 공표, 김문기(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모른다 한거 관련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제1야당 대표가 된지 나흘째인 이 대표에게 검찰이 소환을 통보한 것이다. 100일간의 정기국회가 개막한 날, 협치는 사라지고 전쟁이 선포됐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정치탄압,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치르듯 거세게 대응했다. 마치 '공개된' 문자가 소속 의원들의 결속과 결연한 대응을 준비하라는 지시처럼 느껴졌다. 전쟁 선포는 곧 현실이 됐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을 고발했다. 허위사실공표에 따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부인 김건희 여사의 장신구 신고 누락 의혹 혐의다. 김건희 여사를 수사대상으로 적시한 '김건희 특검법'도 발의했다. 당론으로 소속 의원 전원이 참여했다. 이 상황을 야구로 보면 '벤치 클리어링' 같다. '이재명 지키기'에 전 의원이 벤치에서 뛰쳐나간 형국이다. 강대 강의 맞불인데,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을 보면 정치 공세적 성격이 짙어 보인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8일, 이재명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제1 야당 대선 후보이자 당 대표를 선거 직후 재판에 세운 건 유례가 없다. 야당의 전쟁 선포에 윤석열정부는 이 대표 기소로 답하며 '확전'을 예고했다. 지역에서 명절 인사를 하던 민주당 지도부는 비상 회의를 소집하고, "반협치의 폭거", "군사정권보다 더한 검사정권의 정치탄압"이라며 거칠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이번 기소를 정치적 행위로 보고 있다. 야당 대표 망신주기에 더해, 야당 탄압의 신호탄이란 얘기다. 검찰은 법인카드 유용 의혹이 있는 이 대표 배우자 김혜경 씨를 소환 조사한 날, 이 대표와 '쌍방울 비리의혹'관련해 경기도청을 압수수색했다.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긴 했지만, 이 대표 관련 의혹 사건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했다. 검찰 수사의 칼 끝이 이 대표 부부를 향하고 있다. '조국 수사' 처럼 선택적 수사와 기소의 민낯이 재현되는 것 같다. 여기에 감사원과 경찰 등 모든 공권력이 일사불란하게 동원돼 이 대표는 물론 지난 정부와 야당 인사들을 겨냥하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못한 '검찰독재'가 이런 것인가 싶다.

과거 정치권은 선거가 끝나면 여야가 합의해 고소·고발 사건을 취하하는게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렇지 않다. 대선은 끝났지만, 당시 후보가 수사를 받고, 현직 대통령이 고발당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 맞수였던 두 사람이 다시 정쟁의 링에 올랐고, 배우자들과 한 조가 됐다. 비호감 대선의 연장선 아래 극한의 대결 정치가 2라운드를 맞는 '웃픈' 현실이다.

야당이 우려하는 대목은 이런 것 같다. 이재명 대표에게 심각한 부정부패 정황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먼지털이 수사를 계속한다. 저인망식 수사로 탈탈 턴 다음 수사 정보를 언론에 흘려 망신을 준다. 범죄혐의를 덧씌워서 재판에 넘긴다. 민주당은 전당대회 전부터 줄기차게 '사법 리스크'를 경고해온 비명(비이재명)계와 친명계간 갈등이 불거져 당내 균열의 촉매제가 된다. 야당 구심점이 사라진다. 분당 사태를 맞는다. 2024년 여당 총선 승리를 위한 시나리오 처럼 보인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으로 민주당이 똘똘 뭉쳐 맞대응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퇴행적인 정당정치는 국민 불신과 정치 혐오감을 키운다. 증오만 생산하는 분열의 정치로는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수 없다. 두 사람이 만나서 정치로 풀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0.73% 포인트 표차 초박빙으로 희비가 엇갈린 뒤로,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따로 만난 적은 없다. 이 대표는 지난 13일 '민생경제 영수회담'을 재차 촉구했다. 그런데 야당이 현직 대통령을 고발하고, 만나자고 하니, 여당이나 대통령실 입장에선 '난센스'로 들릴수 있다.

하지만 국정의 책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어차피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지는 것이다. 지금의 낮은 지지율은 윤 대통령을 평가하는 바로미터다.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국민 통합과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서라도 빨리 만나야한다. 정치를 대하는 대통령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협치 위에 법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국민에게 야당 대표와 협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 것이 국정을 안정시키고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이다. 여전히 정치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3중고에 기후재난으로 국민들은 시름하고 있고, 여러 대내외 악재로 국가 위기가 커지는데도, 극단의 정치는 다음 총선까지 계속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 대 '윤석열의 국민의힘'간 진짜 전쟁은 2년뒤 총선이란 얘기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전쟁에 국민은 있는지, 민생은 있는지, 되묻고 싶은 암울한 오늘이다.

서울=김선욱 기자 seonwook.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