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일의 '색채 인문학'(7) 빨간색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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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박현일의 '색채 인문학'(7) 빨간색과 생활
빨간색은 체적이 과대 평가되므로 살진 사람은 피해야
  • 입력 : 2019. 06.10(월) 16:16
  • 이기수 기자

색채와 옷

성격이 조용하거나 소심한 사람들은 대담한 색을 사용하거나 입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빨간 옷을 입고 있으면 그들의 평상시 행동과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성격이 차분하거나 소극적인 한국 남자들은 예비군 복을 입고 예비군 훈련장에 있으면 평상시에 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몸매를 날씬하게 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빨간 옷을 피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빨간색은 중량과 면적 그리고 체적(體積)이 과대 평가되므로 살이 찐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살이 많이 찐 사람은 이 색을 주의해서 입어야 한다.

마젠타

마젠타(magenta) 색은 녹색 파장을 흡수하고, 빨간색과 파란색 파장을 반사시킨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명도가 높은 밝은 색 옷을 입거나 겨울철에는 명도가 낮은 검정색 계통의 옷을 입으면 시원하거나 따뜻하다. 예를 들면, 교복 자율화 이전의 학교에서는 겨울철에 검정색이나 짙은 색 교복을 입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노예를 해방시킬 때나 전쟁의 포로도 자유의 몸이 될 때까지 테두리 없는 빨간색 모자를 씌웠다. 로마 제국의 제5대 황제이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네로(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AD 37년∼AD 68년)가 죽었을 때 백성들은 빨간색 모자를 썼고, 네덜란드와 미국 혁명 때 빨간색 모자를 썼으며, 1791년에 프랑스 자코뱅(Jacobin) 당이 빨간색 모자를 유행시켰다.

로마의 연극 의상에 의하면, 빈곤한 사람은 빨간색 옷을 입었다. 그렇지만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중세 유럽의 신부들은 빨간색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페이즐리

중세 유럽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프러포즈할 때 손수건을 사용했는데, 색깔에 따라 각기 뜻이 달라진다. 빨간색 페이즐리(Paisley) 스카프는 '나는 당신을 상대할 수 있어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페이즐리는 아메바와 비슷한 독특한 둥근 반달 모양으로 구부러진 구슬(曲玉)의 무늬이며, 스코틀랜드의 지방 이름이기도 하다.

빨강은 귀족의 색

1434년에는 귀족만이 빨간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그 예로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년∼1441년)의 작품인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the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1434년)>은 부유한 시민 한 쌍의 결혼식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의 배경은 빨간색 침대와 침대 커튼이 있는 방이다. 빨간 침대는 고귀한 신분의 상징이었고, 위 그림이 그려질 당시에는 빨간 직물이 가장 값비쌌으며, 특히 이 색은 사악한 손길을 막아준다는 미신 때문에 선호되었다.

15세기 영국의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은 랭커스터(Lancaster) 가(家)와 요크(York) 가(家)의 전쟁이지만, 빨간 장미는 랭커스터가의 휘장이고, 하얀 장미는 요크가의 휘장으로 구별된다.

조선시대에는 계급이 높을수록 빨간색 옷을 많이 입었고, 모든 벼슬아치들은 궁궐에 입궐할 때 빨간색 비단으로 만든 초의(初衣)를 입었다. 특히 조선시대 왕비는 보통 때 다홍색을 입었으며, 세자빈의 치마도 역시 다홍색이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죄인을 체포하여 연행할 때 빨간색 끈으로 가슴을 십자형으로 포박하였다.

영국군이 착용한 빨간 외투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에는 빨간색 신부복이 인기를 끌었으며, 이 색은 영국에 대한 반란을 의미한다.

18세기에는 귀족에게 단 하나의 상징적인 특권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빨간색 굽의 구두를 신는 것이었다. 18세기 말 영국에서는 군인들이 착용한 빨간색 외투 때문에 프랑스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적이 있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군복은 화려한 색상의 제복과 금빛 단추로 장식되었다. 빨강은 위험에 처했을 때 담대함을 의미하며, 그래서 이 색은 예전부터 군복 색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전쟁의 신인 화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빨간색 군복이 사라졌다.

문화예술 기획자/ 박현일(철학박사 미학전공)

이기수 기자 kisoo.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