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문화4>1960~70년대 아시아 대중음악에 대한 짧은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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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아시아의 문화4>1960~70년대 아시아 대중음악에 대한 짧은 연대기
  • 입력 : 2019. 10.10(목) 13:42
  • 박상지 기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라이브러리파크에서 진행했던 아시아의 소리와 음악 전시관 전경.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 서양음악 금지와 건전가요

1945년 독립 이후 첫 정권을 수립한 인도네시아 수카르노는 정치·경제·문화영역 등 전반으로 반서구 정책을 펼쳤고 서양 대중음악을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산물로 여기고 '저질 딴따라 음악ngak ngik ngok'이라고 불렀다. 영어 이름을 가진 밴드를 인도네시아식으로 개명하게 했고, 1963년에는 서양 로큰롤 음악이 방송 금지했다. 1964년 반둥에서는 경찰이 엘비스 프레슬리 음반을 압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밴드 코에스 브르사우다라Koes Bersaudara는 비틀즈 음악을 연주했다는 이유로 백일동안 투옥됐다.

당시 음악가들은 정치 이데올로기 재생산에 기여하고 '인도네시아적인' 음악을 만들도록 요구 받았다. 수카르노는 렌소이스트The Lensoist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빙 슬라멧Bing Slamat, 티티엑 푸스파Titiek Puspa 등 유명 음악가들에 말루쿠Maluku에서 유래한 전통 사교댄스인 렌소Lenso 리듬으로 음악을 만들도록 권유했다. 1965년 발매 된 '렌소 리듬과 더불어 행복해져요Mari Bersuka Ria dengan Irama Lenso' 는 1955년 반둥에서 열린 AA(아시아-아프리카)회 10주년 기념 앨범으로, 수카르노가 작사한 '활기차게 Bersuka Ria'라는 곡이 담겨있다.

수카르노가 작사 악보, Gaja Irama 악보집 수록, 연대 미상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소장자료

# 미니스커트와 장발

1960년대 후반 말레이 반도에서 인기를 끌었던 팝 예 예pop yeh yeh 음악은 롤링스톤즈나 비틀즈 등의 영미 음악을 모방하면서 시작해 점차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았다. 당시 막 독립한 신흥국가였던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는 국가 정체성 형성을 위해 전통문화에 기반 한 현대적인 스타일을 추구했다. 반면, 팝 예 예 음악과 미니스커트, 장발 유행 등 서양에 영향을 받은 청년 문화는 기성세대와 대척점을 이뤘다. 아딜 조한(Adil Johan 말레이시아 국립대학교 민족학연구소)에 따르면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싱가포르의 일간지에는 청년문화의 퇴폐성을 지적하고 히피문화에 대해 우려하는 기사가 빈번하게 실렸고, 다큐멘터리 <우드스탁Woodstock> 상영이 금지됐다. 또 싱가포르 정부는 히피문화에 영향을 받은 남성 장발을 막기 위해 관공서에서 장발 남성에 대한 응대를 제일 마지막에 하도록 지시했고, 말레이시아 조호르에서는 국가장학생에 대해 장발 금지, 데모 금지 그리고 장학위원회에서 허가하지 않은 혼인의 금지 등의 규칙이 있었다.

팝 예 예 음악의 시작을 알린 영화 에 대한 기사, 《Lagu2 Fielem & TV》 수록 기사, 1967,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소장 자료

# 사라진 음악가와 시민들

노로돔 시아누크가 집권했던 1950~60년대의 캄보디아는 평화와 번영을 누렸고 예술 활동이 꽃핀 시기였다. 1960년대 캄보디아 대중음악은 서양 로큰롤, 리듬앤블루스, 필리핀 음악, 자국의 전통 댄스음악 등이 결합한 독창적인 음악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쿠데타로 집권한 론 놀 정권은 2년간 사랑 노래를 금지했고, 애국가요만 허용했다. 1960년대 음악도 방송 금지됐으며, 가수들은 군에 징집되어 정권 선전에 이용됐다. 1960~70년대 캄보디아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신 시사뭇Sinn Sisamouth과 로스 세레이 소티어Ros Serey Sothea는 TV에서 군복을 입고 노래하거나 부대에서 낙하산 훈련을 받는 모습이 방영되는 등 선전의 도구로 이용됐다.

1975년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하고 민주캄푸치아 정권을 수립하면서 음악은 더욱더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크메르루주는 서양 영향이 캄보디아 문화를 오염시킨다고 생각했다. 린다 사판(LinDa Saphan 마운트 세인트 빈센트 대학)에 따르면 집권 후 크메르루주는 장발한 남성 처형을 가장 먼저 시행 했다. 이와 함께 모든 대중음악이 금지했고, 음반, 카세트, 라디오를 압수해 파괴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루주 집권 4년 간 약 2백만 명의 시민이 기아로 죽거나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음악을 했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대중 음악가도 죽거나 사라졌다. 신 시사뭇은 1976년 처형됐으며 로스 세레이 소티어도 사라졌다.

라이브러리파크 주제전문관 특별전 《1960년대 캄보디아의 잃어버린 로큰롤》 전시, 2016,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위 이야기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라이브러리파크 <아시아의 소리와 음악> 주제전문관 전시를 통해서도 소개한 바 있다. 이 이야기가 멀고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한국 군사정부가 추진했던 '왜색가요' 추방과 건전가요 육성을 위한 '가요정화운동', 박정희가 만든 <새마을 운동> 노래, 1970년대 초 장발 및 미니스커트 단속, 기성세대로부터 '퇴폐'로 낙인찍혔던 히피 세대, 광주 시민의 죽음과 같이 한국사의 장면과 닮은 모습이 많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에 살며 각자 아시아와 아시아 문화를 어떻게 만나는지 궁금하다. 음악과 역사를 통해 아시아를 듣고 만나고 싶은 분들께 라이브러리파크 <아시아의 소리와 음악> 주제전문관 방문을 추천한다.

아시아문화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 김미정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