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주의 글로벌 에세이>40년 외교관 생활 내겐 큰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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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주의 글로벌 에세이>40년 외교관 생활 내겐 큰 축복
(1)1980년 외교관 입문||최성주 고려대학교 초빙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 입력 : 2020. 03.16(월) 14:55
  • 편집에디터
필자가 외교부 생활을 시작한 때가 1980년이니, 올해로 정확히 40년이 된다. 이후 지난 2018년 말 폴란드 주재 대사직을 마치고 귀국한 후 바로 정년퇴직 했다. 돌이켜 보면, 평생 직업외교관으로 해외근무는 물론, 수시 해외출장을 통해 많은 나라와 사람들, 그들의 언어와 문화, 역사를 두루 섭렵했다. 큰 축복을 받은 셈이며 이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다. 필자는 유럽, 북미, 중남미, 아프리카 등 다양했던 만큼 과거의 수많은 일화와 다양한 경험들을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들려주려고 한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현재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모아 '글로벌 에세이' 연재를 시작한다.



필자가 공직에 입문한 1980년 당시, 광주민주항쟁을 유혈진압하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은 군사독재를 본격화 했지만, 국제적으로는 민주적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은 당시 한국을 일종의 천민(pariah) 국가로 취급하면서 아예 상대하려 들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전두환 정권은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해외에 빈번하게 대통령 특사를 파견했다. 외교부의 신참직원이던 필자와 동료들은 이들의 순방자료를 만드느라 수시로 야근과 특근을 이어가야 했다. 그 땐 인터넷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타자기 조차 보급되지 않아 두툼한 순방자료를 타이핑하느라 많은 이들이 고생했다.



그런 가운데 우리의 경제발전이 고도화됨에 따라 중산층도 두텁게 형성돼 갔다. 이들은 80년대 중반부터 정치민주화를 견인하는 주도세력으로 등장한다. 필자는 1987년 6·10항쟁 당시 명동과 소공동 등 서울시내 중심부에서 직장인, 소위 화이트칼라들이 대거 시위에 나서는 것을 보며 우리 사회의 민주적 변혁을 예상한 바 있다. 지구촌의 대표 스포츠인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는 한국의 역량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계기가 됐다. 동시에, 한국에서 개최된 주요국제회의(APEC·G20 등)의 조직 및 운영능력도 국제사회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필자는 우리의 경제발전에 이은 정치민주화 과정을 해외에서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이 '많이 성장했다'는 걸 실감한다. 요즘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시비 거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한국의 연성 국력, 즉 소프트 파워는 전 세계인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많은 외국인들이 BTS의 노래를 즐기고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이들은 비빔밥을 먹으며 한국 화장품을 애용한다.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 젊은이들도 늘고 있고, 지구촌의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찾는다. 불행히도 현재 우리는 미생물인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우한 폐렴 바이러스의 지속 확산으로 전국이 움츠러들어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위기 앞에서 강해지는 한민족의 위대한 저력을 믿는다. 우리는 현재의 난국을 곧 극복해낼 것이며 그래야만 한다.



*필자 소개: 장성 출신인 최성주(62) 대사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1980년 외교부에 입부한 이래, 38년이 넘는 기간 동안, 프랑스와 세네갈, 오스트리아, 미국, 멕시코, 브라질, 알제리, 폴란드에서 근무했으며 지난 2012년 4월부터 1년간 전남도 국제관계대사로도 근무했다. 지난 2018년말 퇴직 후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반기문재단'에서 근무하면서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