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주차공간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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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임산부 주차공간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
의무설치 ‘조례’ 있지만 불법 단속할 법규 없어||면적·차선 색 등도 제각각… 관련법 개정 시급
  • 입력 : 2020. 04.13(월) 17:33
  • 최원우 기자
9일 광주 신세계 백화점, 임산부 전용 주차공간이 마련돼있지만, '임산부 자동차 표시'가 부착된 차는 없었다.
임산부를 위한 전용 주차공간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지자체에서는 조례까지 제정해 주차공간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탓에 일반 시민들의 무분별한 사용이 이어지고 있다.

●임산부 전용주차공간 "있으나마나"

13일 오전 11시께 서구에 있는 한 건물 주차장.

임산부를 위한 주차공간이 5곳이나 마련돼 있지만, 대부분 일반 차량들을 위한 공간이 된 지 오래다. 마트 출입구와 가까운 탓에 오히려 모두에게 인기 있는 공간이 됐다.

위반 차량에 대한 이렇다할 제재가 없는 것도 이유다.

조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광주시를 비롯해 광주 5개 자치구 모두 '임산부 전용주차장 설치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둔 상태다.

공공시설에 임산부 운전자의 이동 편의를 위해 임산부 전용주차장 설치를 의무 규정으로 두고 있다. 또 임산부가 사용하는 자동차임을 알 수 있도록 '임산부 자동차 표지'도 발급하고 있다.

문제는 위반했을 경우다. 현재 조례상에는 위반 차량에 대해 '다른 장소로 이동해 주차하도록 유도'하는 정도로만 대응책을 규정하고 있다. 위반했을 경우 과태료 처분 등에 대한 규정이 전무하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에도 장애인 주차 위반 차량에 대해서만 2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조례에 따라 현재 광주에는 743개 임산부 전용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다. 자치구별로 서구 135개, 동구 45개, 북구 168개, 남구 103개, 시 관련 사업소 154개 등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임산부에게 양보해주길 권장하고 있지만,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은 법적 근거가 없어 위반 차량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처벌을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처벌 등은 상위법(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야 한다"고 했다.

●임산부 전용 주차장 관련 법안 시급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에 대한 규정도 미흡하다.

장애인 주차장의 경우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을 통해 규격을 명시하고 있다. 주차대수 1대 기준 폭 3.3m, 길이 6m 이상 등 기준이 명확하다.

하지만 임산부 전용주차장은 규정이 없다. 각 자치단체에서 제정한 조례에도 임산부 주차장 시설에 대한 규정이 없는 상태다. 설치한 주체, 장소마다 임산부 전용 주차공간이 다른 이유다.

대부분이 일반주차구역(폭 2.3m)과 다를 바 없는 2.3~2.5m 안팍이다. 임산부가 맘 편히 이용하기에는 비좁은 공간이다.

임산부 전용 주차공간임을 알리는 '임산부 마크'나 주차선의 색도 제각각이다.

임신 8개월째인 장아름(35)씨는 "주차 후 비좁은 공간으로 만삭이 된 배를 안고 내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거의 매번 벽이나 옆에 주차된 차에 배가 쓸리곤 한다"고 했다. 또 "말만 임산부 주차구역이 아닌 진정성 있는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임산부 전용구역을 별도로 운영하기보다 기존의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을 같이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17년 김현아 미래통합당 의원은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을 '장애인 및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으로 변경해 임산부도 주차할 수 있도록 하는 '임산부 주차장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발의 당시 교통약자 간 갈등, 장애인 불편 가중 등의 우려에 현재 소관위에 계류된 상태다.

임산부 전용 주차 공간에 대한 관련 법안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지난 2017년 9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하도록 하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제안으로 만들어진 법안이라 화제가 됐고 금방 통과되는 듯했지만, 이 법안은 상임위에 회부된 채 지난 3년간 실질적인 심사 절차가 진행되지 못했다.

고보혜 광주여성재단 연구원은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은 공공기관과 공영주차장뿐만 아니라 생활 곳곳 어느 곳에서라도 필요한 시설이다"며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지 못해 위반 차량을 단속하지 못하고 사회 전반에 의무적으로 설치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이 아쉽다"고 했다.

최원우 기자 wonwoo.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