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따라 강남갔다, 팔방미인 작가됐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문화 기획
 친구따라 강남갔다, 팔방미인 작가됐다
포스트코로나 9〉 정철호(29)작가||전교1등 친구 사진학원 따라갔다가 사진학과 진학||사진 정체성 고민하다 영국 유학길 올라||유학 중 사진, 큐레이션, 기획, 인터뷰 등 다양한 장르 섭렵
  • 입력 : 2020. 08.19(수) 17:11
  • 박상지 기자

정철호 작 'one thing and another'

연예인 지망생 친구 오디션에 따라갔다가 우연찮게 캐스팅 된 이야기는 톱스타들의 단골 비화다. 정철호(29)작가가 사진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도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반 1등이었던 친구 때문이었다.

"언젠가 1등 친구가 낡은 필름 카메라를 가져와서 사진을 찍어줬어요. 알고보니 사진학과를 가기 위해 사진 학원을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공부도 잘하는 친구가 사진을 잘 찍기위해 학원까지 따로 다니는 모습이 저에겐 충격과 의문을 안겼어요."

사진의 매력이 무엇일까, 궁금했던 정 작가는 친구따라 사진학원에 등록했다. 딱 한달만 배워보겠다고 했던 것이 1년이 넘었고, 자연스레 사진학과에 진학했다.

●살아남기: 작업의 틀을 깨다

"대학교에 진학해서 지도교수님과 끊임없이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예술사진과 보도사진 등 세분화 된 장르 속에서 어떤 길을 가야할 지 고민이 컸어요. 제 작업에는 경계가 없었어요. 보도사진처럼 사회를 고발하는 모습이 있었고, 예술사진처럼 예술성이 돋보이기도 했었거든요. 지도교수님 조차 어떤 길을 걸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예술성을 추구하면서 정 작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필름속에 담아보고 싶었다.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에 대한 아쉬움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했던 것이 영국으로 유학을 결정하게 된 계기다.

"영국에 가니 사진작가들이 사진만 하는게 아니라 기획, 큐레이팅, 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더라고요. 모든 예술 장르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영감을 주고받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진을 배우러 온 저에게 영국 교수님은 하고싶은 걸 마음껏 하라고 하셨어요. 하다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알게될 것이고, 할 수 없는 것도 알게 될 것이라고요. 스스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조언이 용기를 주더라고요."

한국에서 세부 장르를 결정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한 답을 영국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인들은 정 작가를 사진작가라고 불렀지만, 정작 본인은 사진 뿐 아니라 기획, 설치, 큐레이팅, 비평까지 작업 영역을 확장해가고 싶었다고 한다.

●작업하기: 다양성을 접목하다

영국 유학 당시 거주했던 동네 풍경을 담은 사진은 '사진작가 정철호'가 무엇을 추구하는 이 인지를 직설적으로 말해준다. 분리수거통과 일반 쓰레기통 사이의 공간을 담은 프레임은 길가에 버려놓은 '비양심'과 '배려'를 동시에 이야기한다. 아스팔트와 흑색 쓰레기통 사이의 붉고 흰 표지판이 절묘한 예술적 조화를 이룬다.

"두 쓰레기통 사이의 공간엔 낙엽, 각종 집기류들이 늘 놓여져 있어요. 재활용이라고 하기 애매한 쓰레기를 이곳에 버리는 거죠. 비양심적인 행동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청소부를 배려하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는거에요. 영국에선 주로 사소하게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행동 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의미부여 하는 작업을 주로 해왔어요."

학교에서 사진의 전통성을 배웠다면 학교 밖에서는 사진가의 틀을 깰 수 있는 다양한 장르를 두루 경험할 수 있었다. 영국 사진매거진이나 사진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글을 쓰는 법을 익혔고, 사진 관련 각종 행사들을 통해 작품 기획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한 분야에 집중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아니요"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사진작업만 하는 작가들이 있다면 나처럼 사진과 관련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의 다양한 활동이 지역 사진 작가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확신해요."

●살아가기: 한국사진 작가, 세계에 세우다

사진작업부터 설치, 전시기획, 작가연구, 비평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 작가가 최근 가장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은 작가연구다. 전시기획이든 비평이든 작가연구가 기본이 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사진 인프라는 한국이 가장 열악해요. 사진을 좋아하고 작업을 하는 인구는 많은데, 이들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진갤러리와 미술관이 전무한 실정이죠. 다방면에서의 저의 열정이 열악한 국내 상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해외에 국내 사진작가들이 거의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정 작가가 사진분야에서 팔방미인이 돼야 하는 이유라고도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 큐레이터의 국적에 따라 그 국적의 사진작가들이 활발하게 해외 미술시장에 소개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단다.

"일본 사진 큐레이터가 미국을 거쳐 영국에서 활동하는데 일본 사진 작가들만 소개를 하는거에요. 한국엔 그들을 능가하는 작가들이 많은데도, 이들을 소개할 만한 이가 없어서 해외 미술현장에선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죠. 당당하게 국내 작가들을 세계에 소개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어요. 지금까지가 나의 작업을 위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국내 사진작가들을 알리기 위해 나의 역량을 더욱 다지는 시간을 보낼계획입니다."

정철호 작 'one thing and another'

정철호 작 'one thing and another'

정철호 작 'one thing and another'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