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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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붓
바람과 햇볕의 환유, 칼보다 강한 붓
  • 입력 : 2020. 09.17(목) 13:04
  • 편집에디터

대나무를 두드려서 만든 죽필(문상호)

"아버지는 어린 내게 글쓰기를 시키셨다. 선거 때마다 나누어주던 한 장짜리 달력의 뒷면이며 어쩌다 얻은 빛바랜 종이들이 내 공책의 전부였다. 아버지, 무슨 글자를 쓸까요? 무슨 글이든 써라. 글자라고 생긴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 일자무식 아버지는 내가 쓰는 것이 무슨 글자인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셨다. 단지 여백을 채우기를 바라셨다. 희거나 빛바랜 폐지들이 까맣게 채워지는 것을 흡족해하셨다. 마을 구장께 쌀섬 져다주고 수학했던 천자문, 일찍 깨친 한글들, 아무런 의미 없는 그림들을 마구 그렸던 것 같다. 망뫼산 꼭대기 성근 별 같던 글자들은 그렇게 우리집 마당에 내려앉았다." 내가 2020년 목포문학상(남도작가상) 소설부문을 수상하면서 남긴 소감 중 일부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이 소설이든 시이든 혹은 논문이든 내게는 이 땅 민중들의 삶을 추적하는 일이었고, 그 행간과 여백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이 섬 저 섬, 30여년 넘게 동아시아 사람들을 좇아 민속풍정을 기록했다. 내 글쓰기의 연원이랄까. 어쩌면 낙서에 불과하였을 습관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구름 같던 문자들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내게 이른다. 고금의 시간을 거스르고 안팎의 공간을 횡단한 언어들이 내 아둔한 정수리에 내려앉는다. 긴 밤 지새우며 이들을 조우한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았다. 미명의 시간들을 상고한다. 내가 들었던 붓(筆)은 어떤 색깔이었을까. 지금 들고 있는 붓은 어떤 색깔일까. 작은 권력에도 꺾이고 마는 졸필과 시퍼런 칼날마저 오히려 베어내는 대필의 어느 모퉁이였을까.

관용구들이 있다. 붓을 던지다. 붓을 놓다. 붓을 대다. 붓을 들다 등이 그것이다. 흔히 칼(총)보다 붓(펜)이 강하다는 말을 한다. 문학이나 언론의 영향을 빗댄 언설이다.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 설화에서 아히칼은 '말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유리피데스는 '혀는 칼보다 강하다'고 했다. 모두 같은 말들이다. 지극한 문학적 수사만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시절 제창했던 '햇볕정책' 또한 무관하지 않다. 이솝우화 '북풍과 태양'에서 따온 말이다. 어느 날 거리를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있는지를 놓고 북풍과 태양이 힘겨루기를 한다. 다 아는 대로 북풍은 나그네를 더욱 움츠리게 하였지만 태양은 외투를 벗게 만든다. 무력을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는 방식, 여기서의 태양이 곧 붓이다. 사례들은 고금을 관통하여 디지털시대로 이어진다. 댓글이나 언어폭력으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이 늘어난다. 칼보다 붓이 무섭다는 증거다. 붓의 위력이 칼보다 크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광주 진다리붓, 태모필에서 모유필까지

붓은 무엇인가? 문방사우(붓, 먹, 종이, 벼루)서화용구의 하나다. 재료에 따라 짐승의 털을 모아서 만든 모필, 대나무를 잘 두드려서 만든 죽필, 볏짚을 골라서 만든 고필, 칡뿌리나 넝쿨로 다듬어서 만든 갈필 등으로 나눈다. 모필은 청설모, 족제비, 양, 토끼, 너구리, 사슴, 족제비, 노루 등의 털을 이용한다.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황모필(黃毛筆)과 염소털로 만든 양모필(羊毛筆)을 제일로 친다. 그 중에서도 전남 서남해지역 나주, 영암, 영광, 함평 특히 진도 완도 신안 등 섬지역에서 생산된 염소털이나 강원도 등 추운지역 생산품을 최고로 친다. 암염소보다는 흰색의 숫염소털이 좋다. 광주 백운동 진다리에 붓 만드는 이들이 대거 몰려 타운을 이루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숫염소털은 가늘고 길다. 암염소털은 짧고 굵다. 암염소털은 새끼에게 양분을 뺏기는 이유 때문인지 털끝이 갈라지기에 양질의 붓을 만들기 어렵다. 양모필, 황모필 외에 토끼털로 만든 토호필(兎毫筆), 노루의 앞가슴과 겨드랑이의 흰털로 만드는 장액필(獐腋筆), 쥐의 수염으로 만든 서수필(鼠鬚筆) , 돼지의 털로 만든 돈모필(豚毛筆), 말의 꼬리와 갈기로 만든 마모필(馬毛筆), 개털로 만든 구모필(狗毛筆), 청설모 꼬리털로 만든 청모필(靑毛筆), 소의 귀속 털로 만든 우이모필(牛耳毛筆), 닭털로 만든 계모필(鷄毛筆), 꿩털붓, 오리털붓 등이 있다. 식물성 재료인 초필로는 모필 이전부터 사용하던 대나무 붓 죽필(竹筆), 찰볏짚과 오지 볏짚으로 만든 고필(稿筆), 칡넝쿨로 만든 갈필(葛筆), 띠풀로 만든 띠풀붓, 갈대로 만든 노필(蘆筆) 등이 있다. 붓대롱으로는 신우대, 마디대, 오죽대는 물론 옥관, 금관, 은관, 동관이나 도자관, 상아관, 소뿔(牛角)관 등이 있다. 도모칼, 치게(빗), 체, 저울, 작편판, 봉밀, 불솔, 지짐대, 다리미, 한천(우뭇가사리)풀, 가위, 신주방망이, 대잡이틀, 목침, 대칼, 호비칼, 치죽칼 등의 도구들이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만든 붓들이 있는데 광주시지정 무형문화재 문상호씨의 경우, 죽필, 고필 등 특허 받은 붓 외에 태모필과 모유필까지 제작해두었다. 태모필(胎毛筆)은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자란 머리털 붓으로 일본에서는 탄생필이라고 한다. 이 붓으로 공부를 하면 크게 성공한다는 속설이 있다. 모유필(母乳筆)은 어머니의 머리털을 머리빗을 때마다 십수년간 모아서 만든 붓이다. 자르거나 손대지 않은 즉 낭자머리 같은 본래의 머리칼이어야 가능하다. 태모필이나 모유필은 관상 혹은 기념용이기 때문에 실제 사용하려면 다른 털과 함께 제작해야 한다.

태고 이래 인류가 고안한 문자나 그림과 함께했을 붓의 생명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디지털시대를 맞아 필기구 자체의 수요가 둔화된 지금이지만, 캘리그래피(Calligraphy)의 부상 등 붓은 또 다른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붓으로 환유되고 문학으로 은유된 인문학의 힘은 변함없이 칼보다 위에 서있다. 이 땅의 수많은 이들이 붓을 드는 이유일 것이다. 내 붓끝은 지향한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고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은 이름도 빛도 없는 사람들 혹은 이름 모를 들풀과 곤충과 나무와 숲들, 그 행간과 여백을. 나는 위의 소감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폐지의 여백이 영문 모를 낙서로 채워졌던 유년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리 와버렸을까. 어느 해 한 장짜리 달력 뒷면을 절반가량 채우던 즈음, 아버지는 꿈길로나 오실 길을 떠나셨다. 삼십 여년을 훌쩍 넘겼다. 돌아와 거울 앞에 선다. 소설이라곤 공부해본 바 없는 내게 뜬금없이 덧씌워진 이 무게를 어찌 감당해야할까. 동아시아 나들이를 천명처럼 여기고 살았지만 새로운 이 여행은 두렵고 떨리기만 하다. 내 삶의 마지막 순례이리라. 다시 채비를 한다. 쓰여 지지 않은 지상의 시간, 다만 아버지 일러주신 흰 종이가 놓여있을 뿐이다. 무색의 여백이 가없이 넓다."

남도인문학팁

필장(筆匠) 문상호(1942~, 광주시지정 무형문화재 제4호)

전남 장흥 출신이다. 1969년 광주 남구 백운동 진다리로 이사 오면서 필장 일을 배우게 되었다. 27세 때였다. 진다리는 긴 돌다리가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근대기 이후 붓 제작 명소 중 한 곳이다. 지금의 방림동, 봉선동, 백운동, 양림동을 이어주는 다리로 벽도교 진다리라 했다. 만주 대동필방에서 붓 만드는 일을 하다가 고향에 정착한 박순씨와 제자 최유일씨에게 장인 일을 배웠다. 조선후기로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1970년대 전후에는 염소털붓을 가장 많이 만들었다. 붓을 만드는 일 중 재료를 구하러 다니는 일이 절반이다. 양질의 재료를 구해야 좋은 붓을 만들 수 있다. 서울에서 대신당 필방을 운영하기도 했고 경남 밀양의 박무현씨에게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죽필, 고필 등 특허도 가지고 있다. 제자로 오복자, 문홍주씨 등이 있다. 문상호씨와 함께 고 안종선의 아들 안명환이 아버지를 이어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문상호 필장이 만든 갈필(칡), 노필(갈대), 죽필(대나무), 고필(볏짚)

문상호 필장이 만든 붓

문상호 필장이 만든 붓2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모아 만든 모유필(문상호 필장)

외손자의 태내머리카락으로 만든 태모필(문상호)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