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47> 놀멍 쉬멍 걸으멍, 걸어서 제주 한 바퀴, 제주 올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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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47> 놀멍 쉬멍 걸으멍, 걸어서 제주 한 바퀴, 제주 올레길
- 걷는 곳마다 사연이 있는 제주올레길 제5~6코스||※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입력 : 2021. 03.18(목) 11:57
  • 편집에디터

47-1. 위미항 포토존에서

1) 물집이 잡히는 이유

전날에 25km를 걸었다. 그 전날에는 20km. 드디어 물집이 잡혔다. 소천지를 지날 때 오른쪽 발가락 통증이 일어서 양말을 벗었더니 물집뿐만 아니라 발톱 하나가 빠지려는지 피가 묻어있었다. 발톱 2개 정도는 빠져줘야 걸었다고 할 수 있는데…. 나는 몇 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the Way of St. James;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페인과 프랑스 접경에 위치한 기독교 순례길 800km)을 걸을 때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물집 잡히는 것은 걷는 욕심이 크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쉬면서 양말을 벗고 열을 식혀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강행하기 때문이다.

실은 운동화를 조깅화로 가지고 왔다. 첫 번째 올레길 여정을 8일 정도 잡았다. 긴 여정이 아니라 짐을 줄일 겸 가벼운 운동화를 챙겼더니 전혀 방수가 되지 않았다. 눈이 왔던 이틀은 신발과 양말이 다 젖어서 '질퍽'거렸다. 걸을 때 발생하는 열 때문에 발은 시리지 않았다(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신발이 젖거나 물집이 잡히거나 발톱이 빠진다고 해서 겁먹을 것은 없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걷다보면 아름다운 풍경에 헉, 거리며 감탄사가 절로 터지면서 지금 이 자리에 있음에 감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5코스와 6코스를 걷는 날도 그랬다. 전날까지 눈보라가 쳤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하늘이 청옥의 사파이어를 뿌려놓은 듯 눈이 부셨다. 남원(南元) 포구에 차를 세워 두고 해안도로를 따라 15분을 걸었을 때 남원 큰엉 해안경승지 입구에 내가 서 있었다.

2) 큰엉 해안경승지

큰엉 경승지 산책로는 높이가 15~20m에 이르는 기암절벽이 성곽처럼 둘러 서 있는 곳 위에 길이 나 있다. 1.5km 정도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큰엉('큰엉'은 사투리로 '큰 언덕'이라는 뜻인데 '큰 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바닷가 절벽 등에 뚫린 바위그늘을 뜻하는 제주어이다)이 기이하게 시선을 끈다. 새카만 절벽 또한 기기묘묘하다.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는 그야말로 명소 중에 명소이다. 하지만 내가 그 입구에 서 있던 날은 1월 1일. 제주형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행정조치에 따라 주요 관광 명소 출입이 금지되어 리본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에메랄드 빛 바다와 하늘, 그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가고 있었다. 나는 그만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내가 리본 안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마음만은 확고했던 모양이다. 이곳을 걷지 못한다면 제주도를 당장 떠나도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적막. 거센 바닷바람에 뒤로 누운 섬쥐똥나무와 돈나무 군락. 시원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검은 절벽과 속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한 바다와 하늘 그리고 묘한 대칭으로 흩어져 있는 뭉게구름이 나의 망설임을 앗아 갔다. 나는 일말의 죄스러움을 안고서 내 발소리만 들리는 길을 걸었다. 신영영화박물관 근처를 지날 때는 생뚱맞게 공중에 떠(?) 있는 공룡 형상물에 슬그머니 미소가 떠올랐다. 한반도 지도가 보이는 산책로에 들어섰을 때는 그 구도에 감탄했다. 곳곳에 마련된 쉼터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거닐고 있는 곳에 다다랐을 때는 무사히 '금지구역'을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에 숨을 크게 내쉬었다. '신그물'을 지나 마침내 중간스탬프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특별한 관광시설이 없는데도 입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동백나무군락지가 있었다.

3) 위미리 동백군락 그리고 현맹춘 할머니

1870년, 위미리(爲美里)로 시집 온 17세 소녀가 있었다. 생활력이 강했던 그녀는 어려운 형편에 해초를 캐고 품팔이를 하며 근검절약하여 모은 돈 35냥으로 '버득'이라는 황무지를 사들였다. 힘들여 농지 개간을 했지만 모진 바닷바람에 농사가 잘 될 리 없었다. 고민 끝에 한라산에서 동백나무 씨를 받아와 밭 테두리에 심었다. 그것이 자라 지금의 500여 그루나 되는 동백나무군락을 이뤘고 1982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곳을 '버득할망돔박숲(버득할머니동백숲)'이라고 부른다. 그 당시 17세 새색시(현맹춘 할머니)가 심었던 동백나무는 지금은 울창한 숲을 이루어 마을의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길가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중간스탬프를 찍고는 위미항으로 향했다.

검은 바위로 둘러싸인 위미항을 지나 예로부터 맑은 물이 솟기로 유명한 '고망물'과 '넙빌레'를 지났다. 고려시대 말 원나라(몽골제국)의 지배를 받을 때 세금이란 명목으로 거둔 물자와 말 등을 원나라로 보내던 '망장포'에서는 제법 시린 바닷바람에 깜짝 놀랐다. 바닷가 길이 끝나고 오름 예촌망(禮村望, 고도66m)으로 성급하게 들어서서는 그곳에서 서성이다가 덩굴식물이 우거진 오솔길을 벗어나 효돈천(孝敦川) 쇠소깍 다리를 건너 제5코스 종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망설였다. 여기서 멈출 것인가, 좀 더 걸을 것인가…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6코스는 총 길이 11km였고 종점이 서귀포 시내 올레 여행자센터였다. 이틀 후면 나는 집으로 돌아갈 거였다. 욕심을 부려도 되었다. 나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깊은 계곡과 숲 그늘에 고즈넉하게 숨어있는 테우(통나무를 엮어 만든 배)가 떠 있는 풍경을 감상하며 서귀포시로 향했다. 어둠이 내릴 즈음 서귀포여행자센터에서 스탬프를 찍고는 올레시장 근처에 새 숙소를 잡았다. 원래 숙소가 있는 표선(表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차는 남원(南元) 포구에 있었지만 숙박비보다 택시비가 더 들었다. 다음날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7코스를 시작해야하니 하룻밤 정도는 새로운 곳에서 여정을 풀어도 될 것 같았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47-2. 신그물을 지나면서

47-3. 큰엉 해안경승지 산책길을 걸으면서

47-4. 큰엉 해안경승지에 산책길에 있는 한반도 지도

47-5. 서귀포 'KAL호텔 바당' 전망

47-6. 쇠소깍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