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의 찰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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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생과 사의 찰나에서
노병하 사회부장
  • 입력 : 2021. 03.30(화) 18:10
  • 노병하 기자
노병하 사회부장
2021년도 벌써 3월이 지나간다.

꽃 피는 것도 못 보았는데,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마음이라니…

얼마 전 사고가 났었다.

필자의 차를 뒤에서 오던 4.5톤 트럭이 받아버린 것이다. 차는 반파가 됐고 수리비만 몇백만원이 나왔다. 차를 고치는 공업사 사장이 보험사 직원에게 "운전자는 살아 있나요?"라고 물었다는 후문도 들었다.

차가 그 모양이니 운전자도 크게 다쳤을 텐데 왜 고치려는지 의문이 들었을 법도 하다.

당시 4.5톤 트럭이 운전석 쪽을 치고 갔는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사이드 미러가 날아가고 차가 360도 돌았다. 놀랍게도 그 순간은 너무도 멀쩡했다. 되려 침착해졌다. 반대쪽에서 달려오던 차량들의 경적 소리가 들리고 그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것 까지 명확히 두 눈에 들어왔다.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차가 멈춰 서고 매캐한 연기가 코를 파고들자, 그때서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리려 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아 조수석 쪽으로 기어 나왔다. 비상등을 켜고 트렁크를 열어 삼각대를 세웠다.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멍해졌고 당혹스러워졌다. 그럼에도 상대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괜찮은지, 크게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했고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외상이 전무하다는 것을 알자 비로소 참았던 공포가 와르르 밀려왔다.

생과 사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라 했던가. 만약 뒷차가 조금만 더 운전석으로 깊게 들어왔더라면 필자는 저 떨어지는 봄꽃을 더는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사고가 난 뒤 알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다.

먼저 공포는 이겨지는 것이 아니었다.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사고 후 며칠은 눈만 감아도 그 장면이 떠올랐다.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마다 뒷차의 굉음이 한동안 머릿 속을 휘저어 댔다. 병원을 가기 위해 차를 타는 것도 꺼려졌고, 자동차의 경적 소리에도 소름이 끼쳤다. 다행히 5일쯤 지나니 서서히 이런 감정은 가라 앉았지만 지금까지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두번째는 살아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사고가 나던 날, 필자는 운전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최근 한 달여간 마음을 짓누르던 어떤 일들과 그에 따른 분노, 나아질 것 없는 오늘과 미래에 대한 답답함이 겹쳐 있었고 여기에 빽빽하게 들어찬 업무 일정이 머리를 혼탁하게 했다.

그러나 사고 직후 이런 것들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벚꽃처럼 사라져 버렸다. 오로지 남는 것은 생존에 대한 감사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주변인들의 관심이 가장 잘 듣는 치료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고가 난 뒤 생각보다 많은 주변인들이 필자를 도왔다. 차량 인수부터 병원 소개, 입원을 권유하는 많은 사람들, 자신의 차로 나를 태워 병원과 집까지 데려다 준 친구, 화를 내는 친동생 등. 그들의 관심과 잔소리는 보다 필자를 현실로 빨리 끌어 당겼다. 물론 겉으로는 멀쩡하기에 며칠 만에 출근을 하기는 했지만, 만약 주변의 애정이 없었다면 어쩌면 다른 생각을 했을 수도 있었을 터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이라는 단어를 머리맡에 두고 산다.

살아가면서 이를 잊고 살지만, 그렇다고 그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연히 죽음이라는 존재를 마주하게 된 3월 어느 날.

필자의 새로운 좌우명이 '아등바등 살지 말자'로 바뀌었음을, 필자처럼 꽃 떨어지는 것조차 보지 못한 채 헐떡이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알려드린다.

이런 봄, 우리 생에 오십번이 오겠나, 삼십번이 오겠나. 그러니 이 글을 읽고 난 다음이라면, 잠시나마 피는 꽃에 눈길 한번 그윽히 주는 것은 어떨런지.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