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종(75·여순항쟁 유족연합회 회장) (30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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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람들
이규종(75·여순항쟁 유족연합회 회장) (305/1000)
  • 입력 : 2021. 04.22(목) 15:56
  • 김진영 기자

광주사람들 이규종 여순항쟁 유족연합회 회장

"여수·순천 10·19 민중항쟁 유족회장 이규종입니다.

제 아버님께서는 제가 두 살이 되던 해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저희 집안은 할아버지께서 면장을 하는 유복한 집안이었고 아버지께서는 잠깐 나오라는 경찰의 말을 듣고 집을 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니 내일, 모레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비롯해 함께 섬진강변에서 학살당한 수많은 민간인들이 지금껏 시신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88년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눈을 감으셨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보다 더 가슴아픈 일은 아직도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명예회복을 이루지 못한 채 70여년이 넘는 세월이 허무하게 흘렀다는 점입니다.

2005년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 당시 여순 10·19 항쟁은 수많은 국가 폭력 사건들 중 일부로 취급받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주 4·3사건이 없었다면 여순항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방경비대의 폭도 진압 명령을 듣고 '같은 동포를 해할 수 없다'며 명령을 듣지 않은 군인들이 여수와 순천을 거쳐 지리산에 숨어들면서 구례, 보성, 고흥, 곡성 등 수많은 지역의 주민들이 군경에 의해 아무 이유없이 학살당한 사건입니다.

배상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국가 폭력을 인정하고,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을 인정하는 것. 국가에 의해 잘못된 결정이라는 사과 한마디를 듣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그 출발이 여순사건 특별법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어둡기만 합니다. 16대 국회를 비롯해 18대, 19대, 20대 국회에서 번번이 좌절됐고 이번엔 민주당 의원 153명이 결의했지만 결국 해를 넘겼습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국가가 나서 진실을 규명해주고 잘못을 시인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유족들은 이제 80대, 90대를 바라보는 고령입니다.

평생 가슴 속 멍에를 진 채 아픈 세월을 힘겹게 살아야만 했던 유가족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억울한 한을 달래주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광주사람들 이규종 여순항쟁 유족연합회 회장

김진영 기자 jinyo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