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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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
  • 입력 : 2021. 11.28(일) 15:02
  • 이용환 기자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 반비 제공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

박미소 | 반비 | 1만7000원

"술 없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요?."

한국 사회에서 술은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많이 바뀌고 있지만 술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사교, 회식 문화, 술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도 여전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혼자 술을 즐기는 '혼술'의 영향으로 주류 구매율이 되레 14%나 증가한 것도 한국의 현실이다. 같이 마시든 혼자 마시든, 한국에서 술 좋아하는 사람은 여전히 애주가로 불린다.

신간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는 스스로 알코올 중독임을 인정한 저자가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이면서 도대체 무엇이 자신의 중독을 만들었는가를 파고든 책이다.

어느 날 아이를 등교시키고 오전 9시부터 와인 한 병을 비운 저자는 스스로 정신과를 찾은 뒤 알코올 중독을 인정하고 술을 멀리하기 위해 생활 습관을 뜯어고치는 등 안간힘을 쓰면서도 평생을 함께해온 술에 대한 사랑과 매혹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사회적, 생물학적 맥락을 전방위로 넘나들며 긴 세월을 이어온 중독의 원인도 파악하려 애쓴다.

그렇게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알코올 중독 문제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문제로 가져오게 된다.

"사람들은 중독자가 한심한 의지박약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중독자는 중독의 대상을 향해 확고한 의지를 품고 영리하고 기민하게 움직인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 책의 독자로 20~40대 여성을 염두에 뒀다. 흔히 '알코올중독자'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중년 남성 중독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생각보다 많은, 보이지 않는 여성 알코올중독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겪는 경력 단절, 육아 부담, 사회적 불안 등의 경험과 알코올중독의 상관관계는 기존의 전형적인 알코올중독과 상당히 다르다.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과시욕으로 음주에 집착했던 과거 경험도 돌이켜봤다. 여성과 남성이 '술을 마시는 이유'가 다르다는 저자의 주장도 명쾌하다.

저자는 또 중독과 이별하면서 그 인식의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술에 취해 도피하고 방치하는 대신 나 자신의 기쁨과 좌절, 괴로움과 가치관을 세심하게 살펴보라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보다 술이 더 좋다고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한번쯤 꼼꼼히 읽어야 할 것 같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