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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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법관의 의자
사회부 양가람 기자
  • 입력 : 2021. 12.12(일) 13:53
  • 양가람 기자
양가람
"우리나라는 정의의 여신상부터 너무 '고귀하신 분'이야. 칼은 버리고 책만 붙든 채 편히 앉아있지."

지산동을 떠들썩하게 한 전관출신 변호사들의 법조비리를 지켜보던 어느 법조인이 자조섞인 말을 꺼냈다.

지난달 '잘나가던' 판사들이 전관출신 변호사가 된 뒤에도 과거의 판사 인맥을 이용해 재판을 청탁하거나, 몰래 변론을 부탁한 혐의(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구속됐다. 사건 청탁을 받고 (청탁자들의 요구대로) 판결을 내린 후 사직했던 판사 역시 검찰 조사 대상이 됐다.

한 손에 칼을 들고 두 눈을 가린 채 서 있는 다른 나라 정의의 여신상과 달리, 우리나라 정의의 여신상은 칼 대신 법전을 손에 쥐고 두 눈을 뜬 채로 앉아 있다. '법전에서 생산적인 의의를 찾아내겠다'라는 그럴싸한 해석이 따라붙지만, 그럼에도 '완벽한 공평을 기대할 수 없고, 책상 앞에 앉아 법률만 읊조리는 법관의 모습'을 지울 수 없다.

제 아무리 '사법부의 독립'이 불가침의 영역이라지만, '법관 스스로 정의의 칼을 내려놓는' 무책임은 견제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법관의 견제장치는 거의 없다.

매년 광주지방변호사회가 실시하고 있는 법관 평가가 올해도 발표됐다. 지역 변호사 225명이 참여한 이번 평가에서 여전히 일부 판사들은 고압적인 자세로 재판을 진행하는 일명 '높으신 분'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위 법관으로 선정된 5명은 △증거 신청 과도한 제한 △예단 또는 강한 조정 권유 △증거 제출에 대한 면박 등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고압적인 말투와 태도, 재판 지연 진행 등 의견도 나왔다.

지변은 해당 평가 결과를 관내 각 법원과 대법원에 제공해 법관 인사에 반영토록 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11년째 진행 중인 법관 평가에도 달라진 건 없다. 국감에서도 지적됐듯 '몇 년 연속 하위 법관에 이름을 올리는 이들'은 여전히 재판장에서 군림하고 있다.

"법관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정당한 권리행사를 보장함으로써 자유·평등·정의를 실현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행사하여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를 확립하여야 한다. 법관은 이 같은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사법권의 독립과 법관의 명예를 굳게 지켜야 하며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법관은 공정하고 청렴하게 직무를 수행하며, 법관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갖추어야 한다."

법관윤리강령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우리나라 정의의 여신상이 앉아있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법관의 의자(법대, 法臺)가 국민의 눈높이보다 높이 위치한 건 그들이 '고귀한 권력'이라서가 아니라 '돈의 유무와 상관없이 엄정한 심판을 내리는 정의'인 까닭임을 새겨야 한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