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27> 죽음 너머, 예술의 찬란한 감수성(感受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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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27> 죽음 너머, 예술의 찬란한 감수성(感受性)
이선 광주 남구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 입력 : 2022. 02.06(일) 17:19
  • 편집에디터

새해 첫 번째 만났던 책으로 인터스텔라(시대의 인물에 대한 조명을 통해 영감을 주는 디지털 경제미디어 인터뷰 콘텐츠)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저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시대의 지성이며 현자(賢者) 이어령 선생(1934~)의 삶의 철학 그리고 지금 죽음을 마주한 인간의 고귀하고 강인한 생각을 거침없이 던지는 질문과 대화로 기록한 책이다. 그의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는 덤덤한 말 속에는 하루하루 암의 고통과 싸우고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는 연약하지만 강인한 인간이 뿜어내는 통찰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연휴가 끝난 뒤, 변위 오미크론과 선거철의 혼란스러움을 잠시 덮고, 이번 칼럼에서는 인간 원론적 삶과 죽음의 질문을 던지는 예술이야기를 끄집어내고자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으로 개념미술가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1944~2021) 를 소개 한다.

평생 '죽음'에 대한 사유를 작업으로 구현해왔던 볼탕스키는 작품처럼 2021년 전시 준비 중 돌연 타계했다. (*작가는 작년 2021년 7월 14일 세상을 떠났고, 올해 2022년 1월 15일 전시는 오픈하였다.) 부산시립미술관 별관의 이우환 공간에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 4.4》 전시는 결국 생의 마지막 회고전(回顧展)이자 첫 번째 유작전(遺作展)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것이었을까?

2018년 인터뷰에서 "나는 어디에서 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딘가에서 전시를 준비하다 죽을 것 같아요... 아주 먼 나라에 늙은 광대처럼, 언제나 여행하다 길 위에서 죽는 거예요." 라는 말을 전했다.

어쩌면 스스로 총 43점의 작품과 마지막 44번째 작품은 작가의 영혼이 채워주는 의미를 담아 전 생애 동안 선보여 온 모든 '죽음의 작품 그리고 생의 기억과 망각'의 마침표인 셈이다. 생의 마지막, 4(死) 라는 숫자의 한국적 인식에 흥미를 느꼈던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디자인한 '출발', '도착', 'Apr'es(그 이후)' 라는 단어와 '쿵쾅-쿵쾅' 규칙적으로 울리는 작가의 심장박동 소리가 우리를 전시장으로 안내하고, 또 하나의 과정이자 죽음의 묵시록으로 보여준다.

황혼(Crepuscule)_2015(2021년 재제작)_165개 전구_가변크기. 작가소장

설치작품 <황혼(Crepuscule)>(2021년 재제작) 은 전시기간을 상징하는 165개의 전구가 바닥에 놓여 있는데, 전시기간 내에 매일 하나씩 꺼진다. 안쪽 어두운 방에서 명멸하는 과거 사람들의 희미한 얼굴 사진 실루엣이 같이 어울린다. 전시장이 점차 어두워지는 실존적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관객은 세상 속 존재의 무게감을 성찰하게 된다. 전시 마지막 날 암흑이 될 장소인 그 방에서, 생의 불이 하나씩 꺼짐을 온전하게 체감하고 있을 인간 그리고 나를 떠올렸으며 평생 '죽음'을 작업의 주제로 다룬 작가 볼탕스키 또한 같은 처지였음을 일깨워 주었다.

저장소: 카나다(Reserve: Canada)_1988(2021년 재제작)_의류, 전구_가변설치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대표적인 쇼아(Shoah) 작가이다. (*쇼아Shoah란? 유태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이다.) 그는 1944년 전쟁 직후에 태어났고, 성장하면서 들었던 이야기의 대부분은 홀로코스트(*Holocaust, 제2차 세계대전(1941~1945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사건을 의미) 에 대한 것이었으며, 생존과 죽음에 얽힌 모든 상황들은 유년시절의 볼탕스키가 마주한 충격적인 현실이자 세상 그 자체였다. 그가 죽음을 견디고, 죽음의 그림자와 재앙이 공기처럼 무겁게 내려앉은 시대적 삶을 살아가는 것은 결국 삶과 죽음이 한 몸을 공유하고 있으며 같은 의미였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려 살아왔는지 모른다.

'인간-죽음과 삶, 존재와 부재, 기억과 망각'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예술가로서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기에 끝내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이란 개념을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길어 올린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의 연산 작용에서 비롯되었다. 결국 존재를 통해 부재를 증명하는 일련의 이름 없는 자들의 희미한 사진을 통해 존재를 작가는 "사람들이 더 잘 알아볼 수 있게하기 위해서" 이미지의 윤곽을 지웠다 말했고, 실제로 이 사진들은 존재와 삶, 죽음을 추상적으로 연결시키며 각기 다른 입장에서 삶의 기억을 이끌어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그는 개인의 정체성을 지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역사적 사건의 구체성까지 희석하여 비극적 역사에 의한 타인의 감정들을 공통적 공감에서 비롯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보편적 이야기로 대치시키며 작업으로 전달하였다.

1988년 〈저장소: 카나다〉 작품은 억류 된 유대인의 소지품 창고에 버려진 옷을 소재로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이번 전시에서 한국의 중고 옷 1t으로 2021년 재제작 된 작품으로 알 수 없는 수많은 익명의 옷들을 통해 증명되어 사라진 각각의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 '존재하였고 살았던' 시절을 추억하고 상기시킨다. 이어 죽음을 대변하는 700kg 가량의 검은 옷을 산처럼 쌓은 〈탄광〉 작품 또한, 몸에 가장 가까이 실존했던 사물이 그 자체로 죽음과 검은 무덤의 메타포(metaphor)가 될 수 있음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탄광(Terril)_2015(2021년 재제작)_검은 옷, 천 사진_가변설치_작가소장

기념비(Monument, M002TER)_1986_금속 프레임, 전구_300×127cm_작가소장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1986년 기념비(Monument, M002TER) 연작에서는 역사와 그 핵심의 홀로코스트를 언급하며 어린이들 얼굴 사진을 주석 액자에 끼우고 사진마다 백열등을 비추어 마치 제단과 같은 '어린 시절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부여한 작품이다. 그것이 죽음이라기보다 어른이 되면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어린 시설의 은유를 다양한 흑백 인물 사진으로 흐릿하게 보여주며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이 안에는 7세 부터 65세 사이 작가의 얼굴 변화 사진도 함께 찾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평화로운 자연 풍경과 사슴, 일몰, 눈이 덮인 숲,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새들의 영상 사이에 참혹한 장면을 섬광처럼 심어둔 2020년 영상작품 〈잠재의식〉은 특정 역

잠재의식(Sublimanal)_2020_영상_가변설치_작가소장

사적 재앙을 20세기 인류의 화두인 환경과 생태계의 죽음으로까지 확장해 우리를 동시에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만들어 버렸다.

필자는 이번 부산시립미술관 볼탕스키의 전시를 본 후,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 1951~ , 프랑스 시인)이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꾼 작은 글의 정원 <그리움의 정원에서, 2021> 에세이집에서 본 글귀가 떠올라 다시금 상기시키게 되었다. "미래는 아무것도 아니다. 과거는 아무것도 아니다. 현재의 순간이 우리가 죽는 순간과 조우할 때까지, 우리에게는 단지 현재의 순간만 주어져 있을 뿐이다. 사랑은 인생에서 가장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들 가까이 머무르며 이 순간을 사용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어쩌면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찬란한 죽음의 길은 삶 속에서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증명해나가며 현재를 살아가는 일, 지금 누릴 수 있는 사랑과 행복을 만끽하고 지금에 집중해야한다는 메시지를 우리는 어쩌면 '예술가와 예술'이라는 창을 통해 전달받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선 〈광주 남구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