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
현재 국제사회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진입해 있다. 18세기 영국인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점화된 산업혁명은 전통적인 농업기반사회를 제조업 중심사회로 변환시키면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견인했다. 19세기부터 대량생산 시대를 거쳐 20세기 과학기술의 고도화 단계에 이어 21세기 들어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는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 인공지능과 드론(ICBM AD)'으로 대표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정 중 1970년대에 등장한 인터넷은 본격적인 기술혁명의 주역이다. 인터넷은 글로벌화와 디지털화를 촉진한다. 인터넷 시대의 속성은 연계와 융합이다. 우리는 사회 시스템이 상호 연계된 시대에 살고 있다. 연계는 융합을 촉진한다. 이질적인 구성요소들이 효율적으로 연계되려면 상호 융합해야 한다. 인터넷 혁명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정보의 신속 전파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소식들이 실시간으로 전파된다. 모든 개인이 뉴스를 작성하여 언제나 어디로든 전송할 수 있다. 컴퓨터나 휴대폰의 클릭 한번으로 온갖 뉴스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과거에 비해 국가의 활동 영역이 축소된 반면 개인의 영향력은 넓어졌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당사자는 국가(정부)뿐 아니라 기업과 학계, 민간단체 등 비정부행위자(NSA)를 포함한다.
이러한 기술환경의 변화는 전통적인 안보정책의 수정을 요구한다. 전통적인 안보는 정부가 주도해왔다. 반면 기술의 고속 발전에 따라 다중이해 당사자(multi-stakeholder)들이 새로운 안보 환경에 노출돼 있다. 새로운 안보환경에서 정부는 물론, 기업과 학계 등 적극 동참이 절실히 요구된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하는 기술기업의 중심적 역할이 없는 실질적인 신안보 대응을 기대할 수 없다. 이는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업과 소통이 필수적임을 뜻한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터넷과 인공지능과 같은 신기술 개발의 주역은 대다수 과학기술자들이 활동하는 민간기업이다. 신기술의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공무원이 아닌 과학기술자다. 신기술을 육성하기 위해 과학기술자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우대해야 한다. 실무공무원이 탁상에서 지시하고 박사학위를 가진 기술인들은 이에 끌려다니는 사회에선 신기술이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민-관-군의 삼각 협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동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실리콘 밸리 등에 입주한 기술기업과 쌍방향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작년에 미국은 송유관과 식품가공 기업 등에 대한 대규모 랜섬웨어(ransomware) 공격을 받은 바 있는데 그 직후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피해 기업들과 협업해 대응책을 마련한 바 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에서 야기되는 새로운 안보 위협은 새로운 대응을 요구한다. 주권국가들이 신안보위협에 실효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응할 경우 국제안보 차원의 새로운 위협을 효율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최근 유엔이 신기술 및 우주 분야에서 국가의 '책임 있는 행동(responsible behavior)'을 강조하는 결의를 속속 채택하는 직접적인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도 인터넷 및 인공지능과 같은 신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는 만큼 신안보위협 대응을 위한 다중이해 당사자 간 상호협력을 추구해야 한다. 이는 국가안보는 물론, 국제안보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북한과 중국발 신안보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 과학기술자 간의 수평적인 협업이 요구된다. 정부는 과학기술계에 대한 고압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 정부가 예산 지원을 미끼로 과학기술계에 군림할 경우 창의성과 자발성을 기대할 수 없다. 기술에 정치적 셈법이 더해져서도 안된다. 우리 기업들도 국제사회의 신안보위협 대응 동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 분야 국제규범 형성 과정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벤치마킹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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