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명장> 50년 목공예 외길…"전통 잇기 위해 최선 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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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
명인·명장> 50년 목공예 외길…"전통 잇기 위해 최선 다할 것"
‘충장로의 보물’ 동구의 명인·명장을 찾아서||③ 최상원 전라남도 제5호 공예 명장||외조부·외숙부 이어 집안 가업 이어||수입 가구 쏟아지며 생계 위기 맞아||고객 취향 따른 맞춤제작으로 극복||“종사자 너무 적어…기술 전수 주력”
  • 입력 : 2022. 03.08(화) 10:00
  • 곽지혜 기자

목공예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최상원 전라남도 제5호 공예 명장은 "목공예의 가치를 전하고 후학 양성에 힘써 전통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거칠어진 손바닥과 마디마다 잡힌 굳은살에서 그의 50년 목공예 인생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최상원 전라남도 목공예 명장이 운영하는 '국보공예'는 광주에서 유일하게 전통 목공예 제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는 곳이다.

자개의 아름다운 광채를 느낄 수 있는 나전칠기 공예품부터 1000년의 빛을 낸다는 옻칠공예품들까지 다양한 목공예 제품이 한데 모여 저마다 제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지난 50년간 지역에서 목공예의 전통을 지켜온 최상원 명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16살 때 가업 전수…목공예 한 길

1973년 16살로 중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나이였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과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고등학교 진학 대신 목공예의 길을 선택하게 했다. 외숙부에게 목공예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지금까지 50여년간 5만여점의 혼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왔다.

최상원 명장은 "처음 3~4년간 기술을 전수받을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돈을 벌어야 어린 동생들을 보살필 수 있다는 책임감이 목공예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든 시작점이었다"며 "외조부, 외숙부가 이어온 목공예를 제가 전수받아 집안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부분도 크게 작용했다"고 떠올렸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 국보공예와 같은 목공예 공방들이 광주에만 500여곳이 넘었다.

최 명장은 "종사자만 대략 5만명 정도였다고 알고 있다"며 "목공예 중 특히 옻칠공예는 인기가 많아서 가장 호황을 누렸고 종사자도 많았는데, 이제는 옻칠공예 기술자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아쉬워했다.

지금은 구입하고 싶어도 전통 목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공방을 찾기 어렵지만, 수입 가구가 쏟아지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는 그야말로 목공예가 사양 산업으로 접어들던 시기였다.

최 명장은 "80년대 후반부터 목공예 하시던 분들이 다 직업 전환을 하셨다. 자연히 공방도 다 없어졌고 그때 저도 정말 이제 포기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생계유지가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위기에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제품의 질이 떨어져서가 아닌, 유행이 지남에 따라 위기를 맞은 목공예 제품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해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는 "그동안은 기술자들이 만들어 놓은 제품을 고객들이 선택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이제는 고객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내야하는 때라고 생각했다"며 "디자인, 용도 등 고객들 취향에 맞춰 가구 등을 만들어 위기를 탈출했다"고 말했다.

최상원 전라남도 제5호 공예 명장이 직접 만든 목공예 가구를 소개하고 있다.

● "전통, 지키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지난 2018년 전라남도 제5호 공예 명장으로 선정된 최상원 명장은 무엇보다 명장으로써 좋은 작품을 만들어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2000년대 들어 전통 기술 보존의 중요성 등이 강조되면서 목공예품과 기술자에 대한 수요는 다시 늘어났지만, 이미 많은 기술자들이 손을 놓아 목공예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 명장은 "옻칠공예는 1000년을 이어온 우리 전통 공예이고 앞으로도 1000년은 이어 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전에도 그렇지만, 전라남도 명장으로 선정되면서 후학 양성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공력을 들여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판매용 제품은 셀 수가 없고 정말 혼을 담아 만든 작품만 5만여 점 될 것으로 본다"며 "앞으로도 제가 살아 있는 한,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는 계속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 명장은 목공예 옻칠공예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대부분 목공예 기술자들이 자개를 이용한 나전칠기나 목심칠기 등 한 가지 제품을 주로 만들고 있다며 다변화 시대에 발맞춰 목공예 제품 제작도 다양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명장은 "예전에는 한 가지 칠기 기법만으로도 경쟁력이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다변화 시대에는 옛날처럼 한 가지 기술로는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며 "저는 지금 옻칠공예에 관련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제품들을 만들고 있는데 전통을 더욱 오래 지켜가기 위해선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 예술의 거리에 위치한 '국보공예'에 최상원 전라남도 제5호 공예 명장이 만든 목공예 가구들이 전시돼 있다.

● "옻칠공예 등 전통기술 전수 힘써"

광주 동구 예술의 거리에서 오랜 기간 목공예 공방을 운영해 온 최상원 명장은 최근 동구명장명인장인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며 전통 기술을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 명장은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까지 국보공예에서 목공예 체험장도 운영해 오다가 코로나 이후 체험활동을 중단했는데 조금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운영할 계획"이라며 "예술의 거리라는 이름답게 이곳을 찾는 분들을 위해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에는 목심칠기, 나전칠기, 남태칠기 등 다양한 기법으로 탄생한 작품들로 생애 첫 개인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최 명장은 "많은 분들이 제품과 작품은 다른 것이지 않냐고 생각하는데, 작품이라는 것은 물론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지만 누구도 찾아주지 않으면 그 명맥을 이어갈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며 "그런 면에서 기술을 갖고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들에게 제품화나 상업화에 대한 부분을 교육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1명의 후계자를 두고 다양한 방면으로 옻칠공예 기술 전수에도 힘을 쏟고 있다.

담양에 위치한 송강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에서 정기 과정으로 옻칠공예 과정 교육을 진행하며 청소년들에게도 전통 공예의 매력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최 명장은 "그동안 옻칠공예 등 목공예 전통을 이어오면서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살았는데 최근에는 더 이상은 목공예품을 만들 사람이 없어서 전통의 맥이 끊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다"면서 "앞으로 목공예의 가치를 전하고 후학 양성에도 더욱 힘써서 옻칠공예, 목공예의 전통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