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명장> "한국인의 정서 담긴 '한국채색화' 발전시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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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
명인·명장> "한국인의 정서 담긴 '한국채색화' 발전시킬 것"
‘충장로의 보물’ 동구의 명인·명장을 찾아서||⑤김생수 한국전통채색화 화백||‘민화’ 명칭은 일제 잔재…이름 바꿔야||작품활동 계속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색칠한 위에 또 색칠해 ‘진채색’ 매력||해외전시 진행…“공모전 개최가 목표”
  • 입력 : 2022. 04.21(목) 11:00
  • 곽지혜 기자

우청 김생수 화백은 "일제 잔재로 남아 있는 '민화'라는 명칭을 '한국전통채색화'로 바꿔 명명해 고귀한 전통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동감 넘치는 소재와 다채로운 색감이 특징인 '민화'는 옛 민중들의 생활상과 생각이 담긴 한국 민속예술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민화를 '한국전통채색화'라는 명칭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우청 김생수 화백이다.

한국채색화 전문 미술관인 우청미술관의 관장이자 지난 45년간 채색화의 명맥을 이어온 김 화백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광주 동구 금남로2가에 위치한 채색화 전문 미술관인 우청미술관 내부.

● "생계 위해 작품·경제활동 병행"

장흥군 관산면, 천관산 자락에서 태어난 김생수 화백이 그림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7년이다.

당시 민화의 인기가 높아지며 없어서 못 판다는 분위기 속에 청광 김용대 선생의 사사를 받아 그림을 배우게 됐다.

김 화백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광주로 오게 됐는데, 참 가난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벗고 싶어서 주산을 배우고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등 경제력을 갖추기 위해 살았다"면서 "그림을 배우고 서울 이태원에 화랑을 차리면서 지금까지 한국채색화와 함께해왔다"고 소개했다.

빚을 내서 시작한 화랑이었지만 5년만에 서울에 집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김 화백의 화랑은 호황이었다.

그는 "당시에는 저도 민화라는 명칭을 썼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렇게 한국 민화를 좋아해 한 사람이 20점씩 사가기도 하고 대사관 직원들에게도 작품을 많이 팔았다"며 "작품 활동도 꾸준히 해왔지만, 당시에는 일단 경제력을 갖춰야 원하는 그림도 마음껏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회상했다.

10여년간 화랑을 운영한 후에도 김 화백은 액세서리 장사나 가구, 의류사업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작품활동을 병행해왔다.

그는 "미술을 비롯해 모든 예술인들이 고민하는 것이 생계 유지다. 지금도 저는 후배들에게 직업을 따로 갖고 작업을 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며 "그렇게 돈을 벌어 지금 이렇게 미술관도 마련할 수 있었고 채색화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50줄에 들어서서야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그림에만 전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모든 사업을 접고 광주로 돌아왔다"며 "지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전통채색화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고 자란 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노후를 보내고 싶었다"고 전했다.

현재 김 화백은 광주 동구 금남로2가에서 채색화 전문 미술관인 우청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광주 동구문화원 부원장으로 취임하며 지역의 문화예술계를 지원하고 한국채색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생수 화백이 우청미술관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궁중모란도를 그리고 있다.

● 일제 잔재, '민화' 명칭 바꿔야

2008년 김 화백이 광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한국전통채색화협회를 설립한 것이다. 초대 한국전통채색화협회장에서 지금은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그가 협회를 설립한 이유는 일제 잔재로 남아 있는 '민화'라는 명칭을 '한국전통채색화'로 바꿔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김 화백은 "민화라는 단어가 백성 '민'(民)자를 사용하는데 이 말 자체가 일제강점기때 만들어진 말이다.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 문화 등에 백성 민자를 붙인 것은 그냥 국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천황의 백성을 의미했던 것"이라며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인데 그동안 일제 잔재인 명칭을 사용해왔다는 점에서 크게 부끄러움을 느꼈고 한국전통채색화와 같은 우리만의 명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화백은 한국전통채색화라는 명칭을 알리기 위해 잡지나 신문에 기고를 내는 것부터 현수막을 내걸고 전시회를 개최할 때마다 채색화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끈질기게 노력했다.

그는 "사실 예술인들이 작품에만 몰두하지, 불리는 이름이나 역사적으로 가진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긴 어렵다. 전통회화도 한국화, 수묵화, 산수화 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민화만 잘못된 명칭으로 불리는 점이 안타까웠다"며 "여전히 명칭을 바꾸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분들도 있지만,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한국전통채색화라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전했다.

김 화백은 한국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한국채색화만의 매력이 현대에 재조명 받을 수 있도록 집중하고 있다.

김 화백은 "일단 서양화는 면을 주로 활용한다면, 채색화는 선을 이용한다는 것이 다르다. 또 다채롭고 강렬한 색감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데 이런 회화는 일본이나 중국 등 동양에서 대체로 발달해 있지만 모두 결이 조금씩 다르다"며 "중국의 경우 한 번 칠하고 마는 담채색을 주로 사용한다면 한국은 한 번 색을 칠한 위에 또 한 번 색을 칠하는 진채색을 사용해 우리만의 정서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채색화도 초기에는 중간색을 거의 쓰지 않고 원색을 사용했는데, 현대에 와서 색들도 발전하면서 중간색도 많이 사용하고 화려한 색감은 그대로 갖고 있지만 분위기 있는 그림들이 많이 나오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생수 화백은 "마지막까지 광주에 남아 한국전통채색화를 알리고 지역사회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사진은 김 화백과 문하생들의 모습. 김생수 제공

● 해외 교류전 재개…채색화 공모전 '꿈'

김 화백은 남아 있는 인생도 끝까지 광주에 남아 한국전통채색화를 알리고 지역사회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는 "그동안 한독미술교류협회 전시 등 해외에서도 매년 교류전을 진행하면서 좋은 평가를 얻어왔는데 최근 3년간은 코로나 때문에 해외전시를 진행하지 못했다"며 "다행히 상황이 나아져 이번 달에는 하와이에서 교류전이 진행된다"고 알렸다.

이어 "이번 교류전에는 채색화를 비롯해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전통문화품들이 전시될 예정"이라며 "그동안 우리 문화가 또 이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호남대학교 평생교육원과 목포 평생교육원 등 다양한 기관에서 한국채색화 교육을 진행하며 현재는 문하생들이 강사로도 활동할 만큼 후학 양성에도 매진해왔다.

그는 "채색화에 입문하는 분들 중에 서양화를 그리던 사람도 있고, 문인화를 그리던 사람도 있고 전혀 그림을 모르던 분들도 있다. 취미로 시작했다가도 채색화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며 "아마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정서가 조상들의 정서와 맞물려 수많은 전통이 이어지는 것처럼 채색화도 꾸준히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전통채색화를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는 그의 마지막 꿈은 채색화 공모전이 마련되는 것이다.

김 화백은 "민화라는 명칭보다 한국채색화라는 명칭을 널리 알리고 많은 분들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한국채색화 전국 공모전을 만들고 싶다"며 "매년 개최되는 공모전을 통해 한국채색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