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가족 기업에서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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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가족 기업에서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
  • 입력 : 2022. 06.16(목) 15:28
  • 이용환 기자

1954년 6월 16일 독일 볼프스부르크 폴크스바겐 공장에서 비틀 자동차가 조립되고 있다. 비틀은 당시 하루 900대가 생산됐고 볼프스부르크도 전후 서독이 재건하는 데 큰 힘이 됐다. 뉴시스 자료사진

독일 100년 기업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제공

독일 100년 기업 이야기

요시모리 마사루 | 한국경제신문 | 3만원

독일에는 가족 단위의 사업장으로 출발해 전 세계를 호령하는 브랜드가 많다. 대표적인 산업이 자동차다. BMW, 폭스바겐, 포르쉐 등 기업들은 소규모 가족기업에서 출발해 지금은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했다.

무역업, 광산업, 대부업 등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푸거는 창립연도가 1512년이다. 철강 기업 크루프는 1811년, 광학기기 기업 자이스 1816년, 산업기기 전문 보쉬 1886년, 글로벌 미디어 기업 베텔스만 1835년, 제약 기업 머크도 1827년에 창립됐다. 모두 2세기가 넘도록 지속되는 기업이다.

신간 '독일 100년 기업 이야기'는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의 가족기업을 소개한 책이다. 가족기업, 즉 가족이 지배적 의결권을 갖는 기업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에서는 가족기업을 높이 평가한다. 가족기업의 비율도 2006년을 기준으로 43%에 육박한다. 거의 절반이 가족기업인 셈이다.

책에서는 선구적인 고임금, 노동시간 단축, 기업 내부의 복리후생제도와 시설의 자발적인 도입 및 확충 등의 기준에 부합하는 푸거, 크루프, 자이스, 보쉬, 베텔스만, BMW, 포르쉐, 폭스바겐, 머크 등 9개사의 역사와 특성을 살피고 있다.

어떤 전략으로 발전의 기초가 된 혁신적인 제품·기술·판매 방식을 실현했는지, 그 과정에서 종업원의 근무조건·복리후생제도·시설을 어떻게 개선했는지도 분석했다.

그렇다면 독보적인 시장지위와 사회적 명성, 대를 이은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저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기술, 종업원의 근무 조건 향상을 위한 노력, 공익재단의 설치와 사회적 책임의 실천 등 3가지를 꼽는다.

푸거는 16세기 직물 생산업에서 도매무역상으로 업종을 전환한 뒤 대부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빈곤자를 위한 주택 '푸거라이'를 건축했다. 크루프는 최고 품질의 철강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자이스 또한 현미경·천체망원경·쌍안경 등의 분야에서, 보쉬는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내연기관용 점화플러그 분야에서, 베텔스만은 출판 분야에서 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노동 조건도 다른 어떤 나라보다 앞서 있다. 연간 24일의 유급휴가가 보장되며, 최종 월급의 75%를 연금으로 지급하고, 연말에는 1개월분의 급여를 수당으로 지급한다. 일요일과 공휴일의 노동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특히 해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노동 조건이 자리 잡기까지 크루프, 자이스, 보쉬가 선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베텔스만이 이익참여제도를 도입하여 노동 조건 개선과 종업원의 자산 형성을 이끌었다.

기업이 거둔 이익을 직원들에게 더 많이 배분해 노사간 신뢰도 쌓았다. 푸거, 크루프, 자이스, 보쉬, 베텔스만, BMW 등이 설립한 공익재단은 기업의 탄탄한 윤리관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재단이 제 역할을 해내면 회사와 제품에 대한 신뢰도 또한 높아진다.

책은 가족기업 소유자나 관리자, 종업원 또는 독일과 거래 관계가 있는 기업경영자, 독일의 기업경영에 관심이 있는 학생과 연구자를 위해 쓰였다. 또 사회공헌 및 지배구조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는 점에서, 최근 경제계의 화두인 ESG를 고민하는 경영자에게도 큰 도움을 준다.

'기업의 오랜 역사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기업이 지속가능하고 핵심 경쟁력을 갖기 위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사회공헌'이다'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