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이 사망했다.
신군부 중요인물 5인(전두환, 노태우, 이희성, 황영시, 정호용) 중 한 명인 그는 다른 가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끝내 피해자에 대한 사죄 없이 세상을 떴다.
12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에 따르면, 이 전 사령관은 지난 6일 향년 98세로 숨진 뒤 8일 발인을 거쳐 경남 고성군 선영에 묻혔다.
그는 육사 8기로 1979년 육군참모차장 재임 당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과 함께 12·12군사반란을 일으켜 5·18 학살을 주도했다. 이후 교통부 장관과 대한주택공사 이사장을 지냈지만 1997년 김영삼 정부에서 내란·반란죄 수괴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다.
5·18조사위는 이씨가 5·18 당시 계엄군 증파, 집단 발포, 광주외곽봉쇄작전, 최종 진압 등을 논의한 '9인 회의'에 참여한 사실을 확인, 대면 조사를 벌였다.
이씨는 지난해 대면 조사에서 책임을 부인하며 "내가 다 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해당 진술에 대해선 전두환의 5·18 진압 결정 개입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제 그가 사망하면서 신군부 핵심 5인 중 생존 인물은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만 남았다. 정씨는 5·18조사위의 진상 규명 활동에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5·18조사위는 입장문을 통해 "이 전 사령관의 사망을 애석하게 여기며,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이 지난 42년간 피해자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조사에서 '모두 다 내가 한 것은 아니다'는 언급만 남긴 채 사망해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요인물과 관련자들이 국민 통합과 화해를 위해 역사 앞에 진실을 고백하길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공수부대 계엄군이 1980년 5월27일 새벽 전남도청 시민군 진압 작전을 마치고 도청 앞에 집결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한국일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