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지성' 이어령이 남긴 마지막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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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지성' 이어령이 남긴 마지막 노트
  • 입력 : 2022. 07.14(목) 15:53
  • 이용환 기자

눈물 한 방울. 김영사 제공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지난 6월 28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고(故) 이어령 석좌교수의 '눈물 한 방울'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육필원고를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눈물 한 방울

이어령 | 김영사 | 1만5800원

"암 선고를 받고 난 뒤로 어젯밤에 처음, 어머니 영정 앞에서 울었다. 통곡을 했다. 80년전 어머니 앞에서 울던 그 울음소리다… 불안, 공포, 비애 앞에서 아무것도 감각할 수 없는 차돌이 되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어제 그런데 울었다. 엄마 나 어떻게 해"

지난 2월 타계한 이어령이 지난해 7월 남긴 고백이다. 비평과 창작을 넘나든 200여 권에 가까운 저서를 남긴 그를 대개의 사람들은 '거대한 지성'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그가 자신에게 털어놓는 말미의 말, 아니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를 혼잣말은 '눈물'이었다.

탁월한 통찰력으로 문명의 패러다임을 제시해 온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1934~2022)이이 남긴 마지막 육필원고인 '눈물 한 방울'이 출간됐다. 지난 2월 별세한 저자는 2017년 간암 판정을 받은 뒤 항암 치료를 거부한 채 집필에 몰두했다. 약속된 프로젝트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하지만 뜻밖에도, 저자가 출간 계획 없이 내면의 목소리를 기록 중인 별도의 노트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 전에야 알려졌다. 저자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생명과 죽음을 성찰했다. 그리고 자신의 친필과 손 그림이 담긴 이 노트를 생전에 공개하지 않았다. 사멸해가는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루하루 대면하는 일상과 기억은 과연 저자의 내면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새로운 화두로 제시한 '눈물 한 방울'은 무엇일까.

책은 두툼한 노트 한 권에 2019년 10월부터 별세 한 달 전인 2022년 1월까지 쓴 글 147편 가운데 110편을 골라 실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추억, 가장 작아서 가장 큰 가치인 '눈물 한 방울', 세상을 놀라게 한 자유로운 사유와 창조적 영감, 병마와 싸우며 가슴과 마음에 묻어두었던 절규까지. 생전에 공개하지 않았던 인간 이어령의 내밀한 말이 시, 산문, 평문 등 다양한 형식의 글로 담겨있다.

특유의 번득이는 사유, 멀지 않은 죽음과 그동안의 삶에 대한 성찰과 회한 등도 에세이처럼, 시처럼 흐른다. 몇몇 손 글씨도 그대로 담겼다.

그에게 지성과 상상의 원천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죽을 때까지 다 셀 수 없는 모래알들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징표로 등장한다. "어머니… 나는 지금 아직도 모래알을 세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다 헤지 못하고 떠납니다."(12쪽)나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죽음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망연자실의 감정이 드러나는 글 등은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121쪽에 나오는 "큰 욕심, 엄청난 것 탐하지 않고 그저 새벽 바람에도 심호흡하고 감사해 하는 저 많은 사람들,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세요."라는 신에게 갈구하는 마음에도 고귀한 인류애적 가치가 엿보인다.

저자는 또 자유로운 사유와 창조적 영감으로 새로운 의미와 재미를 생산해내는 '크리에이터'였다. 클레오파트라, 이상, 정지용, 사뮈엘 베케트, 쇼팽, 조르주 루오, 빅토르 위고, 공자, 노자 등 동서고금의 이야기들이 문학, 철학, 역사, 예술, 기호학, 물리학, 생물학, 기하학 등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종횡무진 이어진다.

이어령은 우리에게 영원한 스승이면서 창조적 지식인이었다. 마음 따뜻한 아버지이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이기도 했다. 그는 죽음을 앞둔 지난 1월 어느날 새벽에 '나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차피 정해진 인생, 과연 우리에게 남아있을 마지막 말은 무엇일까.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