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놓치고 있는 생명에 대한 15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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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놓치고 있는 생명에 대한 15가지 질문
  • 입력 : 2022. 08.25(목) 13:58
  • 이용환 기자

폴 고갱 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고갱은 생명의 탄생과 죽음, 그 사이에 놓인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는 인간의 원시적인 모습을 강렬한 빛과 색채로 표현했다. 이 작품의 제목은 미술사상 가장 철학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스턴 미술관 소장.

생명을 묻다. 이른비 제공

생명을 묻다

정우현 | 이른비 | 2만2000원

현대는 생물학의 시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들썩이는 가운데 지금은 PCR 검사나 백신 접종이 왜 필요하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줄기세포 치료나 유전자 치료를 받으며 자연스레 노화를 억제하고 수명 연장을 기대하는 시대도 눈앞에 다가왔다.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 생물학과 첨단 공학기술이 결합해 탄생한 '트랜스 휴머니즘'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초인류의 탄생도 꿈꾼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아직도 생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은 생명이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생명이 무생물로부터 우연히 생겨났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생명의 본질은 결국 유전자와 뇌로 환원될 수 있으므로, 이것을 분석하면 생명 전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뇌 신경계의 적절한 연결과 조합이 인식과 정신을 만들어 낸다고 본다. 따라서 유전자를 조작하고 마인드 업로딩을 성공적으로 이뤄낸다면 전대미문의 새로운 생명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생명을 바라보는 현재의 이런 관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것은 과연 과학적일까. 그렇게 생각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정우현의 신간 '생명을 묻다'는 호기심 가득한 여행처럼 생명이라는 신비의 세계에 새로이 눈을 뜨게 해주는 재미있으면서도 깊고 아름다운 책이다.

서울대 과학학과 홍성욱 교수도 책을 두고 '생물학이라는 씨줄과 철학과 문학과 예술이라는 날줄을 엮어 만든 인간의 얼굴을 한 생물학'이라고 했다.

저자는 '생명은 우연인가'라는 민감한 질문을 시작으로, 생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명은 어떻게 진화하는지, 그리고 생명에 어떤 법칙이 있는지 등 현대과학이 간과하기 쉬운 15가지 질문을 도발적으로 던진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위대한 과학자와 사상가들과 더불어 생명의 본질에 대해서도 사유한다. 생명이란 우연한 존재인지 필연적인 존재인지에 대해 철학자 데카르트와 유전학자 자크 모노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생명이 물질인지 정신인지에 대해서는 진화학자 리처드 도킨스와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에게 의견을 묻는다.

우리가 아는 생명에 과연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유전학의 아버지 그레고어 멘델과 노벨상 수상자 바버라 매클린톡의 말을 경청한다. 끊임없이 진화해 나가는 생명은 결국 무엇이 되려 하는지에 대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과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주장도 신선하다.

생명의 본질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것도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경외감으로 압축된다.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인간의 첫째가는 미덕"이라고 노래했던 로맹 롤랑의 아름다운 시구와, "자신의 생명이 존귀하다는 것을 자각할 때 삶은 더 큰 환희를 안겨준다"라고 말했던 괴테의 고백은 과학이 주는 낭만과 윤리다.

과학이나 생물학만으로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과학은 생명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에게 과연 그것의 소중함을 역설할 자격이 있을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를 다룬 3부도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생명은 존재가 아니라 과정'이라거나 '세상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 '없어도 되는 생명은 없다', '바보야, 문제는 윤리야'라는 등의 주장도 신선하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