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명장> "오래된 사진 속 시간을 되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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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
명인·명장> "오래된 사진 속 시간을 되돌려 드립니다"
‘충장로의 보물’ 동구의 명인·명장을 찾아서||20. 김충식 사진복원 명인||사진에 초상화·그림 기술 접목||“손님들 추억 찾아드리며 보람”||한국전쟁·광복 역사사진 복원도||대한명인회 사진복원 명인 선정
  • 입력 : 2022. 08.26(금) 09:11
  • 곽지혜 기자

김충식 사진병원 대표는 손님들에게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에 모든 사진에 최선을 다한다.

사진은 특별하다. 자연도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모습이 변하기 마련이지만 사진 속에서는 그 순간이 영원히 남아있다.

김충식 대표는 기억하고 싶은 그 순간을 마치 마법처럼 되살려주는 사람이다. 빛이 바래진 사진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생생하게 살아난다.

지난 40여년간 사진복원사로 살아오며 그의 손을 거쳐간 낡은 사진들은 수십만장을 넘겼다.

그의 손이 닿으면 함께 모여 찍은 사진 한 장이 없어 아쉬워하던 형제들은 어릴적 모습 그대로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 일찍 세상을 떠나셨던 아버지의 빈자리가 못내 아쉬웠던 결혼식 사진에서 김 대표는 가족들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선물하기도 한다.

손님들의 시간과 추억을 되돌려드리는 데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김충식 사진병원 대표의 인생을 들여다봤다.

광주 동구 계림동에 위치한 '사진병원'에서 김충식 대표가 이른 아침 찾아온 손님의 증명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끝없는 배움 통해 최고 기술자로

어려운 가정형편에 중학교를 채 졸업하지 못하고 형의 소개로 여수의 한 스튜디오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김 대표는 착실히 필름 현상부터 촬영 기술 등을 익히며 사진을 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만난 초상화가의 권유로 그림과 사진복원 기술을 배우게 된다.

김 대표는 "선생님이 사진에 붓질을 하니 좀 지저분하던 머리도 정리가 되고 옷도 단정하게 바뀌더라"며 "그 모습이 참 신기하고 저도 사진을 하고 있으니까 이건 정말 내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서울로 상경해 초상 사진 기술을 익히다 '왜 광주에는 이런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없을까' 생각했다. 1980년대 초반만해도 광주에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는 많았지만, 초상 사진이나 인화를 전문으로 하는 곳은 드물었다.

지인의 소개로 광주의 한 화실에서 초상 작업과 인화 작업을 하던 김 대표는 1997년에서야 계림동에 지금의 '사진병원'을 차릴 수 있었다.

'사진병원'에서 김 대표의 역할은 당연히 '의사'다. 구겨지거나 찢어진 사진, 오래돼 색이 바랜 사진들을 고쳐준다.

초상 기술을 배워 온 그로써는 자신 있는 일이었지만, 당시는 아날로그 사진 기술들이 디지털로 전환되던 시대로 사진 복원도 기술과 기계가 대체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사진이 파일로 저장되고 수정까지 됐으니 인화 작업도 크게 줄었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하던 김 대표는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세밀한 기법과 자연스러운 효과는 사람 손으로만 가능하다는 생각에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포토샵 기술은 물론, 수정 사진 기법, 인물 스케치까지 그야말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들며 실력을 쌓은 결과 컴퓨터만으로는 작업하기 어려운 의뢰들이 그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흐린 사진이라든가 얼굴이 좀 많이 망가지고 얼굴이 그냥 날아간 사진들도 있고 벗겨진 사진들도 있다. 이런 것들은 디지털만으로는 할 수 없는 작업이다"며 "스케치 인물 공부 다시 한 것을 토대로 그런 사진들도 모두 복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 계림동에 위치한 '사진병원'에서 60년 전 결혼식 사진 복원을 의뢰한 손님과 김충식 대표가 복원된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손님들에겐 값진 추억…정성 쏟아"

사진병원을 찾아온 손님들은 김 대표가 복원한 사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디지털카메라나 휴대폰 등 지금은 흔하디흔한 것이 사진을 찍는 일이지만, 과거에는 중요한 순간 남겨놓은 사진 한 장이 큰 가치를 지녔다.

과거 새마을금고 이사장을 지냈다는 한 손님은 60년 전 결혼식 사진 복원을 김 대표에게 의뢰했었다. 흐렸던 흑백사진 속 가족들의 모습은 어느새 선명하고 생생해져 주인을 찾아갔다.

손님들에게 오래된 사진 한 장은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물건이다. 김 대표는 그런 손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모든 사진에 최선을 다한다.

김 대표는 "우리가 옛날 젊었을 적에 청춘 시절이라든가 유년 시절 추억이 담긴 사진들은 모두 각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며 "옛 추억을 다시 되살려주는 것만으로도 저마다 오랜 세월을 지나온 이들에게는 값진 선물이다"고 설명했다.

병원에 누워계신 어머니에게 젊은시절 사진을 복원해 선물해 드리고 싶다는 딸부터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증명사진을 가져와 결혼식 사진의 어머니 옆에 놓아 드리고 싶다는 아들까지, 저마다 사연을 갖고 있는 손님들의 사진을 복원하다보면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다.

그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좀 오래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합성이야 별일이 아니지만 두분이 살아오신 세월이 다르니 마지막 모습이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의뢰를 해오신 분도 있었다"며 "그러면 어머니 머리에 흰머리도 그려넣고 아버지는 주름도 조금 없애고 이런 작업을 통해서 두분이 정말 한 시기에 함께 찍은 사진처럼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 계림동에 위치한 '사진병원' 작업실에서 김충식 대표가 오래된 사진의 스케치부터 다시해 사진을 복원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 역사사진 통해 복원기술 활성화 모색

김 대표가 사진복원에 평생을 바쳐오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사진 촬영이나 그래픽 등과는 다르게 복원기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전문적인 양성 체계도 없고, 관련 교육과정도 없는 것이다.

그는 "이 복원 기술을 좀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하면서 옛 자료들을 모아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진 등을 복원하기 시작했다"며 "한국전쟁이나 광복 등 오래된 사진들이 많은데 이런 사진을 복원해서 전시를 하면 지역사회에서 의미도 있고 사진복원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자료 수집부터 복원 작업, 사진을 액자에 넣고 설명 자료를 작성하는 것까지 누구의 지원도 없이 혼자 진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낮에는 의뢰받은 일을 하고 밤잠을 줄여가며 전시를 준비했다.

첫 전시는 한국전쟁 60주년 전시였다. 공간이 마땅치 않아 가게 앞 거리에서 사진을 주르륵 세워 놓고 전시를 했다.

한 사진복원가가 역사적 사진들을 홀로 복원해 거리에 전시를 한다는 소식에 언론과 자치구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동구청 등의 지원으로 2015년에는 광복 70주년, 2019년에는 3.1운동 100주년, 2020년에는 한국전쟁 70주년 특별사진전 등을 열 수 있었다.

김 대표는 "꼭 인물 사진만 복원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역사적인 사진들을 복원해서 젊은 세대들이 역사를 더 생동감 있게 접할 수 있게 한다면 복원가로써 굉장한 의미를 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복원한 사진들은 생동감이 흘러넘친다. 흑백사진에는 색을 입히고, 희미해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던 독립운동가들과 전쟁을 직접 겪었던 이들의 감정이 전해진다.

김 대표의 복원사진 전시는 실제로 지역사회 역사교육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전시된 사진들을 학교 역사자료 사진으로 사용하시기도 하고 역사관장님들은 정말 중요한 사진들을 복원해달라며 의뢰를 해오시기도 한다"며 "전시를 보고 감상문을 작성하는 과제를 받은 학생들의 글을 보고 정말 고생은 했지만 보람있는 일을 했다고 여겨졌다"고 전했다.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지난해에는 대한명인회 사진복원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개인적으로도 보람된 일이지만, 명인 선정을 사진복원이 더욱 활성화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 싶다"며 "현재 월간 사진협회지에 복원이야기와 자료사진을 매월 올리고 있는데, 사진복원 기술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고 전문가들을 양성할 수 있는 방법을 협회와 진지한 논의를 거쳐 구상하고 있는 만큼 계획이 실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밝혔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