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역사와 죄의식에 대한 감동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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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역사와 죄의식에 대한 감동의 서사
  • 입력 : 2022. 10.13(목) 14:08
  • 이용환 기자
지난 2020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1465차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독일 나치와 일본 욱일기가 새겨진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나는 독일인입니다

노라 크루크 | 엘리 | 1만9800원

"'나는 독일인 입니다', 읽기를 멈출 수 없었고, 다 읽은 후에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는 책 평가를 그대로 빌리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음으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상처가 많기에 더 공감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최근 SNS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올린 '나는 독일인 입니다'에 대한 서평이다.

20세기는 인류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러니의 세기였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인구 증가세를 보였지만, 동시에 두 번의 세계대전과 유대인에 대한 홀로코스트, 공산당의 숙청으로 가장 많은 인구가 학살당한 시대였다. 특히 독일은 이 두 번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당사국이다. 그런 독일인으로 산다는 것, 그걸 체험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상력에 도전하는 일일지 모른다. 전후 2세대 독일에서 태어나 브루클린에 살고 있는 노라 크루크의 책 '나는 독일인 입니다'는 전쟁과 역사, 죄의식에 대한 감동적이고 독창적인 서사이면서 역사의 계승자로서 모든 인류가 안고 가야 할 책임감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이 책의 독일어 원제는'하이마트Heimat.'다. 맨 처음 우리의 존재를 형성하는 장소, 한 세대의 감수성과 정체성이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장소를 뜻하는 이 단어는 우리 말로는 배경이나 분위기, 한 사람을 둘러싼 환경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은 환경의 결정'이라는 맥락에서 환경이라는 단어에 딱 들어맞는 독일어가 하이마트다.

독일인은 중학교에 입학하면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을 분석해 자신의 입장을 내놓아야 하고, '영웅' '승리' '긍지'라는 단어는 사용을 삼가해야 한다. 오래된 민요들도 배우지 못한다.

이 책의 초반부에 그려진 독일인으로서의 그 복잡한 내면은 우리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이마트라는 하나 하나의 경험을 통해 독일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죄의식과 수치심이 마음 한자리를 차지하고 때로는 뿌리를 찾아가는 일에조차 두려움을 느끼는 그들의 정체성에 때로는 연민이 일기도 한다.

저자는 편지, 사진, 기록물 등의 역사 자료와 만화, 일러스트, 콜라주 등 시각 장치를 이용해 나치 독일의 역사에 얽힌 가족사와 진실을 대면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펼쳐 보인다.

죽음을 목전에 둔 전쟁터에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리움이 절절한 편지를 보낸 작은 할아버지, 열여덟 살에 나치의 병사로 타국에서 목숨을 잃은 삼촌, 가족들의 회상과 달리 나치당에 입당했었음이 드러나는 할아버지까지 그의 행적은 개인사를 넘어 독일의 전후 2세대가 독일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반추하게 한다.

진짜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된 후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끼고 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인간' 노라의 용기도 감동이다. 마침내 20세기 최대의 피해자인 유대인으로부터 어떤 용서를 경험할 때는 동시대 아이러니의 세기 동안 전쟁과 식민의 시대를 지나온 우리 민족의 험난한 여정이 겹쳐져 독자를 울컥하게 만든다.

독일은 오래전 자신의 과거를 사과하고 반성했다. 하지만 강제징용부터 전쟁까지 나치와 비슷한 아픔을 우리에게 안긴 '이웃' 일본은 되레 우리 탓을 하며 과거를 부정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의 기류를 볼 때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도 요원하다.

그런 환경 때문인 것일까. "우리에게도 마음으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상처가 많기에 더 공감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서평이 가슴을 울린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