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와 장관의 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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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참사와 장관의 실언
  • 입력 : 2022. 11.01(화) 16:01
  • 이용규 기자
이용규 논설실장
1989년 4월15일 영국 세필드의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열린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레스트 FA컵 준결승 축구경기에서 리버풀 팬 96명이 사망했다. 원정팀 리버풀 팬들이 단체로 버스를 대여해 경기 직전에 도착, 서둘러 경기장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혼란스런 와중에 경기장 측 실수로 정원이 1,600명 남짓한 입식 관중석에 약 3,000명이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경기장 진행 요원들은 계속해서 해당 입석으로 관중을 유도했고, 질식사 직전에 이른 사람들이 2층으로 기어 올라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훌리건이 필드에 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둔 보호 철망으로 사람들이 밀려 경기 시작 5분 만에 철망이 무너져 내려 94명이 압사하고, 부상 후유증으로 3명이 사망함으로써 전체 사망자는 97명이 됐다. 행정의 대처 미흡으로 사망자가 늘고 경찰과 정부의 책임 회피와 은폐 축소가 사건 후 수십년간 파헤져졌다.

참사 직후 경찰의 미숙한 입장관리와 구조대응 논란에도 불구하고 1991년 조사위원회는 이 사고를 단순 사고사로 결론내렸다. 그러나 2010년 새 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재조사로 결론이 바뀌었다. 새 조사위는 지도력 실패와 응급 구조의 공조 실패라고 매듭지었다.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대한민국이 슬픔에 빠졌다. 지난달 29일 도로위를 걸어가다 156명이 죽음을 당하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국가에서 발생한 것이다. 참사 현장의 아비규환, 절규들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절절이 박혀 있다. 광주전남에서도 10명의 젊은이들이 꽃봉우리를 피어 보지도 못한 채 저버렸다. 이들의 황망한 부음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골목은 폭이 좁고 경사로인데 10만 여명이 몰려 개인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군중 전체가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떠밀려 순식간에 일어난 참사였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압사 밀도는 1㎡당 10명을 기준으로 하는데 7명이상이면 압사가 일어날 수 있고, 12명이 넘어가면 대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태원 사고 현장에는 ㎡당 8~10명이 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특히 65㎏ 성인 10명이 밀려오는 하중 압력은 18톤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돼 송곳 하나 뚫을 수없었던 이태원 현장의 고통이 느껴진다.

자발적으로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행사임을 알고도 행정과 경찰의 안전불감증은 할말을 잃게한다. "주최자가 없다"는 이유로 적극 개입하지 않은 행정 참사이다. 되레 경찰은 지난해 53명을 배치한 인원을 137명으로 크게 늘렸고 용산구청에서는 "우리 행사는 아니나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했다"고 면피성으로 일관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 병력을 늘렸다고 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겠느냐"며 "사고 결과가 나올때까지 추측성· 선동성 발언을 자제해달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장관의 발언에 귀를 의심케한다. 파문이 커지자 부실대응으로 사과는 했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본 도쿄 시부야구는 3년전 핼러원을 앞두고 구청의 질서 훼손 단속 권한 조례 제정과 경찰 이외 민간 경비원 투입 등 안전대책은 우리의 벌거벗은 모습과 비교돼 너무 씁쓸하다.

축제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대형 사고도 많지만, 현실성있고 꼼꼼한 대책 수립과 실천 의지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법원은 행정, 경찰의 책임에 있어서는 단호하게 판단해 경각심을 갖게한다. 그렇기에 이태원 핼러윈 행사와 관련한 경찰과 행정의 사전 대책회의 등 내용은 공개돼야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책임자들의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은 낯익은 장면이다. 이번에도 국가 안전을 책임지는 장관은 면피성 실언으로 일관했다. 피해자와 국민의 아픈 생채기를 덧내는 것은 물론 향후 경찰 조사와 수사에도 객관성을 유지할 지 의문이다. 이상민 장관은 대한민국의 안전을 책임질 리더로서 자격을 상실했다. 스스로 물러나는 게 좋을 것같다. 나만의 생각일까? 이용규 논설실장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