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어린이집·유치원이 노인시설로 바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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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광주, 어린이집·유치원이 노인시설로 바뀌어 간다
어린이집 3년간 120곳 줄어들어 ||아동 정원충족률 70% 내외 불과 ||폐원 후 요양원·보호센터로 전환||"저출산·고령화 사회 이제는 현실"
  • 입력 : 2022. 11.08(화) 17:35
  • 김혜인 기자
최근 3년간 광주 어린이집 현황과 정원충족률. 최홍은 편집디자인
# A씨는 34년 동안 운영하던 유치원을 폐원하고 리모델링 공사를 해 올해 7월 노인주간보호센터를 개소했다. 한때는 178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동네 유명 유치원으로 자리 잡았지만 원아가 점차 줄어들면서 결국 50여명 밖에 남지 않자 눈물을 머금고 유치원을 닫아야 했다. 유치원을 오래 운영했던 A씨의 지인들도 진작 노인복지시설로 전환한 것도 한 몫했다.

# 지난 8월에 요양원을 연 B씨는 가족 명의로 된 건물에서 오랫동안 유치원 일을 해왔다. 그러나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어 원아가 정원의 30%밖에 되지 않자 결국 15년된 유치원 문을 닫아야만 했다. 유치원을 운영하는 동안 여러 부동산의 노인복지시설을 지을테니 건물을 팔라는 유혹도 뿌리쳐왔지만 결국 B씨도 2년의 고민 끝에 요양원을 개소했다.

광주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줄어드는 대신 노인 복지시설이 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현실화 된 것이다.

8일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광주시의 어린이집 수는 2019년 1122곳에서 2021년 1002곳으로, 총 120곳이 사라졌다. 올해의 경우 9월 기준 어린이집은 950여곳 밖에 남지 않았으며 정원 충족률 또한 평균 70% 안팎이다.

반면 노인복지시설에 대한 수요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지난 2020년 8만2544곳이었던 전국의 노인복지시설은 2021년 8만5228곳으로, 1년 새 3000여개가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광주에서는 어린이집에서 노인 복지시설로 전업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지난해 2월 유치원을 폐원했던 A씨는 유치원 운영 실태에 대해 "대부분 학부모들이 학교 내에 있는 병설 유치원을 경제적 부담이 덜하다는 이유로 보내려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원이 차면 사립유치원을 찾는 경향이 있다"면서 "한 때 유치원 입학 대기까지 걸 정도로 북적였다. 하지만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더니 지금은 그 병설유치원도 20명 정원이라 치면 15명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유치원을 닫고 빈 건물을 보며 어떤 일을 해야할지 헤매던 B씨의 경우 유치원에 재직하면서 간간히 들려왔던 부동산의 매각 문의들이 기억났다. 결국 요양원을 열기로 했지만 그 과정도 쉽지 않았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B씨는 "아이들이 줄어드는 흐름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나. 교실은 텅텅 비어가고 인건비 등 지출은 고정적으로 나가다보니 현실적으로 문을 닫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요양원은 유치원보다 더욱 까다로운 건물 내 시설 조건들을 갖춰야 했다. 노인들의 보행안전을 위해 엘레베이터가 필수인데, 기존 유치원에는 없던 시설이라 새로 갖추는 공사를 스스로 부담해서 진행할 정도로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이었다"고 회상했다.

운영자들은 어린이집·유치원과 노인복지업계는 엄연히 성격이 달라 적응하는 데 고충이 깊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A씨는 "폐원하기 직전까지도 잠을 못자고 실패했다는 좌절감에 빠질 정도로 정말 힘든 결정이었다"며 "아이들보다 훨씬 더 눈을 뗄 수 없는 대상이 어르신들이다. 치매 노인들이 많아 온갖 괴롭힘도 이해하며 넘어가야 하는 정신적인 고통도 있고, 넘어지더라도 아이들은 가벼운 타박상에 그칠 수 있지만 어르신들은 관절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예의주시해야 하는 체력적인 고충도 있다"고 말했다.

강선미 한국어린이집총엽합회 민간분과위원회 광주지회장은 "고령화 저출산 문제가 오래 전부터 언론 등을 통해 언급됐지만 이제는 현실이다. 2~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노인시설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며 "유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인복지시설을 열기까지 까다로운 조건과 절차를 거치고 자부담으로 리모델링을 하는 등 물리적인 환경이 만만치 않다. 또한 몇 십년 동안 아이들을 상대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어르신들을 관리하는 입장이 되다보니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 정부 차원이 지원이 전제되지 않으면 시설을 정착시키는데 운영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고 전했다.

김혜인 기자 kh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