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강박은 애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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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저장강박은 애착이 아니다
김혜인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2. 11.15(화) 17:28
  • 김혜인 기자
푹신하고 알록달록한 애착 베개가 있다. 부모님이 사다 준 베개였는데 어렸을 적부터 속상할 때면 그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리곤 했다. 내 사춘기 시절부터 함께한 터라 베개 솜이 뭉치고 천이 닳아져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하나씩 애착이 가는 물건은 있다. 옷, 베개, 이불, 인형 등 사람마다 다양하다. 애착이라 하면 사람이나 물건 등에게 갖는 특별한 정서적 관계나 마음을 말하는데 저장강박증에 걸린 사람들이 보이는 증상도 과연 애착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저장강박증 사람들의 애착은 내가 가진 헌 베개에 대한 마음과는 다르다. 지난 10일 저장강박증에 시달린 고광수씨의 집에서 7톤의 물품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선풍기, 이불, 전자레인지 등 생활가전이나 용품이었다.

"우리같이 겨울이 추운 사람들한테는 이불 하나하나가 소중해요."

그 중에서도 고씨는 이불과 겨울옷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바닥에서 잠을 이뤘지만 보일러 한 번 튼적없는 고단한 겨울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런 생활을 증명이라도 하듯 쌀쌀한 날씨에도 고씨는 반팔을 입고 이정도는 춥지도 않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남구 사직동에 거주하는 고광수씨는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깔끔한 성격이었다. 그러나 택시업계 불황이 찾아오면서 생활비를 아끼기위해 헌옷수거함에서 옷과 이불 등을 주워오기 시작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저장강박가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각 지자체별로 조례를 만들어 개선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고씨가 살고 있는 광주 남구 또한 올해부터 저장강박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진행해 지금까지 세 가구를 지원했다.

이들을 발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복지 통(이)장, 지역단체 등이 움직여 사례를 신고하고 지원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제는 저장강박가구가 이러한 사업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남구 관계자에 따르면 고씨 또한 저장강박증세로 동네에서 유명했지만 주거환경개선사업에 참여시키기까지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하나 둘 주워온 물건들을 다짜고짜 버리라고 할 수 없다. 이들이 이토록 거부하는 이유는 없어진 물건을 새 것으로 장만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에다.

방안을 가득채운 헌 이불을 빼내려는 봉사자들을 막던 고씨도 새 이불을 마련해주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그제서야 이불을 포기할 수 있었다.

저장강박증은 사회가 만들어낸 강박장애다. 애착이라는 말로 개인의 심리적인 요인으로 치부시킬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얽혀있다. 때문에 이들에게 현실적이고도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방안 빈 공간을 또 물품들로 채우려할 것이다.

김혜인 기자 kh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