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라고 쓰고 협치라고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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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월드컵이라고 쓰고 협치라고 읽자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 입력 : 2022. 11.24(목) 12:53
  • 서울=김선욱 기자
김선욱 부장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아세안 정상회담과 G20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했다. 4박 6일 동남아 순방에선 숨가쁜 외교전이 펼쳐졌다. 미국, 일본, 중국 정상들과 릴레이 정상 회담을 성사시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은 2년11개월만이다. 윤 대통령은 12월중 외교 성과와 새정부 국정과제 이행 등을 국민에게 직접 알리는 보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취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만나지 않고 있는 정치인이 있다.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다. 중국 정상도 3년만에 만났는데, 여소야대 정국에서 아직도 만나지 않은 정치인이 국정의 동반자이자 파트너인 야당 대표다. 윤 대통령의 정치력 부재, 협치 실종의 현주소나 다름 없다.

같은날, 미국에서 한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정치적 갈등' 수준이 주요국 1위라는 내용이다.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가 민주주의 19개국 국민(각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올해 2∼6월 조사해 비교 분석한 결과인데, '남남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달해있음을 보여줬다. 진보·보수진영의 맞불 집회가 한국의 심각한 정치적 분열을 상징한다고 봤다. 정치적 갈등은 대선 이후 더 격해지는 양상이다. 서울도심 곳곳에선 주말마다 진보와 보수단체들이 집회 대결을 벌이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과 야당 대표를 비판하며, 상반된 정치 구호를 쏟아낸다. 막말과 욕설이 판을 친다. 국민통합에 방점을 찍고 출범한 윤석열정부에서 국정 운영이 분열로 흘러왔음을 방증하는 '현장'인 셈이다.

갈등은 어디에서 부터 시작됐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아닌가 싶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진영의 한과 애통함은 여전하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빚은 보수정권의 '정치적 타살'로 인식해 왔다. '노무현의 죽음'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맞으며 이념 갈등으로 증폭됐다. 작금의 갈등 양상은 지난 2017년 탄핵때와 같은 상황이다. 진보단체는 촛불을 들고 '적폐청산'을 외쳤고, 태극기 부대 등 극우 보수단체는 '탄핵 무효'로 맞섰다. 마치 지진의 진앙지 처럼 극단적 대결은 격해갔다. 여진은 강도를 더해, 정치와 사회 곳곳으로 번져갔고,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

어느때 보다 협치와 상생의 정치가 절실한데, 윤 대통령 당선 이후 협치와 상생은 사라져버린 것 같다. 지난 10일 윤 대통령의 취임 6개월 여론은 차갑다 못해 싸늘했다. 30%대 였던 국정수행 지지율이 20% 후반까지 떨어졌다. 국정 동력이 가장 강한 임기 초의 지지율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야당과의 소통과 협치를 위한 의지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달 19일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대통령실로 초대한 자리에서 이를 재차 실감케했다. 윤 대통령은 "종북 주사파와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해, 협치의 대상인 민주당의 오해와 반발을 불렀다. '뜬금없는' 색깔론으로 불필요하게 야당을 자극한 꼴이 됐다.

이대로 가면 윤석열 정부 4년 6개월동안 협치는 없다는게 여의도 정가의 목소리다. 여야 협치의 실종은 정치 부재를 낳고,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연결된다. '작동하지 않는 민주주의 시대'가 열렸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10·29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가 시민들의 뇌리에 '국가부재'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을 심사하는 예산 정국에서도 여야는 대치하고 있다. 여당은 야당이 '윤'자, '대'자만 나와도 반대한다며 대선불복의 연장선이라고 보고 있고, 야당은 권력기관 유지 예산이라며 삭감으로 맞서고 있다. 예산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데, 민생을 위한 국회가 작동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결국 이 모든 국정 현안을 풀어가는 출발점은 대화다. 정치로, 협치로 풀어야 한다. 해법은 대통령이 쥐고 있다. 앞에서는 야당의 협조를 부탁하고, 뒤에서는 통치하려 해서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존중과 신뢰가 담보되려면,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고 본다. 협치의 실종이 길어질수록 국가 위기는 커지고 서민들의 고통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18일 국회에서 협치의 불씨가 될지도 모를 한 장면이 연출됐다. 내년도 예산안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검찰의 이 대표를 향한 전방위적 수사 등을 둘러싼 극심한 갈등 속에 성사된 축구대회다. 국회의원 친목모임인 의원축구연맹이 여야 대립 속에서 친선 축구 대회를 열었다. 여야 축구대회는 2000년 이후 22년만에 처음이다. 여야 의원들은 적어도 이날 운동장에서 만큼은 서로 몸을 부대끼고, 둥근 축구공을 다투며, 함께 땀 흘리고 호흡했다. 대통령실에서도 이진복 정무수석이 국회 운동장을 찾아와 축하하며 대회의 의미를 더했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이 시작됐다. 온 국민이 한국 대표팀의 승리를 염원하고 있다. 우리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하나로 뭉쳤던 기억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함성 아래서 모두가 포용하고 통합했다. 2002년의 국민 대통합 열기가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월드컵을 통한 국민적 통합 에너지는 정치권의 협치로 모아질 수 있다. 다음달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통합과 화합의 국민 에너지를 하나의 용광로에 녹일수 있는 '월드컵 리더십'이 발현되길 기대해 본다.

서울=김선욱 기자 seonwook.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