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79-1> 인권도시 광주서 살아가는 험난한 이주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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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79-1> 인권도시 광주서 살아가는 험난한 이주민의 삶
●제1회 광주이주민인권포럼||'코로나19와 이주민 인권' 주제로||이주여성·노동자 등 차별 설움 토로||의료기관 이용 등 불편함 호소도||"다문화 담론 형성위해 노력 필요”
  • 입력 : 2022. 11.20(일) 18:28
  • 정성현 기자
제1회 광주이주민 인권포럼이 지난 19일 광주 동구 미로센터에서 열려 박흥순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소장, 이상옥 사단법인 이주가족복지회 이사장, 김선 국제연대연구센터장, 최홍엽 조선대 교수, 이미선 몽골계 한국인 등이 주제발표와 토론을 펼치고 있다. 김양배 기자

외국인 근로자·이주 여성·유학생 등의 이주민들은 이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들이다. 각계각층에서 상생하고 있는 이들은 어느덧 한국 사회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

'이방인'의 딱지를 뗐다고 해서 이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외국인이란 이유로 자신의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거나 비난 받는 등 이주민들은 여전히 '편견'과 싸우고 있다.

● 재난 상황에서 마주한 이주민 차별

코로나19 기간 동안 이주민들이 겪은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이들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는 행사가 광주에서 열렸다. 지난 19일 광주 동구 미로센터에서 열린 '제1회 광주이주민인권포럼'이다.

이날 필리핀 출신 리셀 이 게그리모스씨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경험하면서 많은 이주민들이 법·제도·인식 등에서 많은 차별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리셀씨는 "은행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한 중국 출신 이주민은 직원에게 '중국 사람들은 왜 박쥐를 먹냐'는 무례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며 "그는 그저 중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코로나19에 대한 비난을 감수해야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보 접근권에서 소외됐다고 느낀 이주민 △일자리가 없어 서너 달 동안 매일 김치와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한 이주민 △층간 소음에 시달렸지만 해결할 수 없었던 이주민 등의 사례를 소개했다.

리셀씨는 "'국민이 먼저'라는 정부의 말도 이해하지만, 한국 사회에 귀화한 이주민도 국민이다"며 "여러 상황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이주민을 위해 '다문화 공동체 인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인권도시 광주만의 제도·행정적 움직임이 있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이날 발표한 이주민들은 또 다른 문제로 '무관심'을 꼽았다.

필리핀 이주 여성 메리암 디비나그라시아 마뉴엘씨는 "지난 2007년 한국으로 귀화한 뒤, 아무것도 모른 채 15년 동안 내 이름을 지우고 살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과거 행정당국 규정 상 주민등록등본에 적을 수 있는 이름이 최대 여덟 글자였기 때문에, 한동안 '메리암 디비나그라'라는 이름으로 살았다고 했다. 올해 8월에서야 비로소 가족관계등록부에 모든 이름을 명시할 수 있게 됐다.

메리암씨는 "병원이나 은행에서 항상 나는 '디비나그라씨'라고 불렸다. 처음에는 그게 한국의 문화인 줄 알았다"며 "추후 다문화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이것이 '외국인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임을 깨달았다. 십 수 년 동안 아무도 나에게 '이건 문제다'라고 말해주지 않았다"고 담담히 전했다.

이어 "이름을 수정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은 내 문의에 몇 번이고 '알아보겠다'는 대답만 했다"며 "관련 제도를 직접 알아보는 등 한참 발 벗고 나선 뒤에야 겨우 부모님이 지어준 소중한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1회 광주이주민 인권포럼이 지난 19일 광주 동구 미로센터에서 열려 박흥순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소장, 이상옥 사단법인 이주가족복지회 이사장, 김선 국제연대연구센터장, 최홍엽 조선대 교수, 이미선 몽골계 한국인 등이 주제발표와 토론을 펼쳤다. 정성현 기자

● "이주민 위한 국가·지자체 노력 선행돼야"

20일 국가인권위원회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기간 이주민들이 겪은 피해 상황은 크게 △경제적 문제 △의료기관 이용의 어려움·두려움 △차별적인 제도·정책(긴급재난지원금 등) △다문화 기관 휴원으로 인한 자녀돌봄 △일상에서의 차별·혐오 △재난 관련 정보 부족 등으로 나타났다.

소득 감소와 함께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은 이주민들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최홍엽 조선대 법학과 교수는 "정부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재난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완화하고자 국민들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며 "문제는 이 가운데 외국인들은 원칙적으로 배제됐다는 점이다. 법규를 살펴보면, 결혼이민자·영주권자 등 일부를 제외한 미등록 외국인·재외동포 외국인·외국인근로자들은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이는 국제인권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주민들은 긴급재난문자에서 모국어를 선택할 수 없는 등 정보 접근 방식에도 다양한 문제를 겪었다"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한정적이다 보니 병원·학교 등에서 충분한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주민들의 정보 접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국가·지자체의 노력이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흥순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장은 "언어·문화·전통이 다른 낯선 나라로 이주해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며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순간 차별이 발생한다. 우리가 이들을 '국민이냐 아니냐'로 가르기 보다, '사람'으로서 포용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난 19일 제1회 광주이주민 인권포럼이 열린 광주 동구 미로센터에서 박흥순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소장과 메리암 디비나그라시아 마뉴엘씨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정성현 기자

정성현 기자 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