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윤리… 식습관을 넘어선 비거니즘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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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윤리… 식습관을 넘어선 비거니즘의 모든 것
  • 입력 : 2022. 12.11(일) 13:09
  • 이용환 기자
지난 8월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2022 서울동물권행진에서 비건 무당 홍칼리 등 퍼포머들이 진혼춤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비거니즘. 호밀밭 제공

비거니즘

하이파 지로 | 호밀밭 | 2만2000원

기후 위기는 이제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 아닌 불평등과 착취가 초래한 결과이면서 우리가 요구해야 할 마땅한 권리가 됐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가장 주목받은 개념도 비거니즘이다. 국내에서 비거니즘은 단순히 '채식주의'로 알려졌지만, 정말로 비거니즘이 단순한 '채식주의'만을 의미하는 걸일까.

문화연구가 에바 하이파 지로의 신간 '비거니즘'은 비거니즘을 둘러싼 윤리와 정치이론을 망라한 책. 비거니즘이 단순한 식습관을 넘어 우리 시대의 불평등과 윤리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담론의 최전선임을 폭넓은 문화 이론과 정치, 윤리, 사회학적 담론을 통해 보여준다.

비거니즘은 단순한 식습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비거니즘을 '먹는 방식'으로만 축소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비거니즘의 대중화가 지닌 위험은 바로 식물 기반 자본주의가 '식습관 그 이상'으로 기나긴 역사를 지닌 운동을 '그저' 식습관으로 축소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인간과 동물 관계에 대한 질문을 단절시키고 비거니즘과 다른 사회정의 사안들 사이의 연결점도 잘라 버린다. 명명백백한 인간지배제의 문제점을 가리고, 단순히 동물을 먹는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도 단순한 비거니즘의 문제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비거니즘이 단순한 채식주의가 아니며, 동물과 인간을 지배하는 불평등에 저항하는 가장 실천적인 사회운동이라고 주장한다. 또 정체성, 지역 정치, 액티비즘, 동물 지리학, 에코 페미니즘, 포스트 휴머니즘, 인종이론 및 신물질주의 등 다양한 연구에 기반해 비거니즘이 식단 선택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조리법부터 펑크 미학, SNS 캠페인 등 다양한 예시를 통해 비거니즘의 급진적 잠재력이 상업화 때문에 어떻게 복잡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동시에 비거니즘을 급진적인 사회운동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어떤 개념을 복구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이밖에도 저자는 상상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비판에 맞서 비건 실천을 옹호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깔끔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비거니즘이 제기하는 정치·윤리적인 사안들을 동시대 역사 속에서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비거니즘을 식문화의 한 형태로 파악하려면, 역설적으로 비거니즘을 '식습관 그 이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도 저자의 주장이다. 비거니즘이 음식을 넘어서 동물 윤리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가 아니라, 기존의 인간-동물 관계를 비판하는 폭넓은 윤리적 함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가장 시급한 관심사인 식습관 그 이상이 되고자 하는 비거니즘의 분투가, 주류가 되면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려동물 가구 600만 시대지만 여전히 인간은 동물을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공장식, 밀집식으로 사육하고 있다. 오로지 '인간의 이윤'을 위해 만들어진 사육방식 때문에, 생명이 있고 인간처럼 고통도 느낄 줄 아는 동물은 몸을 돌리거나 사지를 펼칠 수 있는 움직임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동물과의 공존을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채식이다. 채식을 하는 이유는 동물의 삶을 위해서일 수도 있고, 건강을 위한 선택일 수도, 자연환경을 위한 것일 수도 있으며, 종교 등 그 외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민 한 사람이 조금만 육식을 줄이는 것으로도 축산동물들의 고통과 환경 파괴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동물과의 공존을 넘어 비거니즘을 젠더학, 장애학과 같은 하나의 학문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