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시를 사랑하고 시와 함께한 노 시인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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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시를 사랑하고 시와 함께한 노 시인의 독백
  • 입력 : 2022. 12.22(목) 10:43
  • 이용환 기자
동백꽃은 언제 피려나. 한누리미디어 제공


동백꽃은 언제 피려나

천영희 | 한누리미디어 | 1만2000원

"지친 삶/바람에게 기댄 채/떠도는 구름 따라가는/황혼의 끝자락/​물살에 할퀴어/섬 안에 갇혔던 상채기/빗장 열고 안고 가는 파도소리 들으며/신새벽/삭정이 끝에 매달린 오늘을 줍는/여인의 손끝이 하얗게 떨고 있다·"(오늘을 줍다 전문)

8순을 앞둔 노 시인. 평생 시를 사랑하고 시와 함께 살아오면서 무엇이 바른 시인의 길인지를 고민해 온 나주 출신 천영희 시인이 '동백꽃은 언제 피려나'를 출간했다. '내 시는 연둣빛'과 '가을을 낚다'에 이어 천 시인이 출간한 3번째 시집이다.

상상력을 발동해서 인간의 지나친 욕망을 경계하고 시간과 공간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생 치열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온 노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남은 삶을 통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가벼이 남은 여생을 맞겠다는 여유와 비워냄의 의지도 읽혀진다.

시집은 목차부터 눈에 쏙 들어온다. 1부 뒷모습이 아름답다에 이어 2부는 수양버들 가지에 봄은 출렁이고, 3부는 씽긋 웃는 속눈썹이 예쁘다, 4부와 5부는 각각 쓸쓸함에 대하여와 행복은 꿈속의 파랑새로 이어진다.

"인고의 세상살이/사랑과 미움을 저울에 달아본다/팽팽한 수평이다." (세상살이 중에서)

이상호 한양대 명예교수는 이런 그의 시를 두고 "인생살이를 저울에 달아보는 것은 몸무게가 아니라 마음상태를 계속 성찰하고 점검하는 것"이라며 "고통을 참고 감내하며 자아를 성찰하는 시인에게 사랑과 미움은 모두 팽팽한 수평으로 다가온다"고 썼다. 시인이 살아 온 나잇값이며, 세상을 치열하게 성찰하고 꿈꾼 덕분에 보상 받은 열매라는 것이 이 교수의 평가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함께 자신의 삶이 절대적으로 행복했다는 고백도 잊지 않는다.

"시간은 샅바를 틀어쥐고 붙잡으려고 하지만/냉혹하게 뿌리치고 앞만 보고 지나간다/힘으로/돈으로/명예로/유혹해 봐도/호각소리에 맞추어 행군하는/저 발자국 소리/시간은/만질 수도/볼 수도/들을 수도/맛볼 수도 없다/그냥 스쳐 지나간다."(지나간다 전문)

사진관에 홀로 앉아 사진을 찍으면서 변해버린 세상과 함께 잊혀진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것도 노 시인인 만이 가능한 독백이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스스로 묻고 답하며 독자들에게 남은 세월을 더 이상 허송해서는 않된다는 가르침이 짧은 시의 그릇에 가득 담겨있다.

"…재발급용 사진 속/세파에 흥건히 찌든 노파/허공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 낯선 모습/댁은 뉘시요?/잠시 얼굴을 만져본다/보아도 보아도/낯선 얼굴이다."(낮선 얼굴 중에서)

천 시인은 나주가 고향. 지난 2015년 종합 계간지 포스트모던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