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문제의식'과 '현실감각'으로 지역 혐오와 갈등 타개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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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문제의식'과 '현실감각'으로 지역 혐오와 갈등 타개 해야
홍어와 전라도||서울에 견주어 지방을 얘기하던 시절에는 출신이나 성분을 숨기던 것이 예사였던 시절….||엉뚱하고도 뜬금없는 지역에 대한 폄훼와 인격 모독.||홍어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따라놓고 호혜평등과 공생공존의 지역학을 생각한다.
  • 입력 : 2022. 12.22(목) 16:21
  • 편집에디터
홍어

문화분권의 시대, 지역자치의 시대, 지역학의 시대라는 화두가 제기된 지 매우 오래되었다. 그 기간이 숙성된 만큼 지역의 독창적이고 특별한 문화가 존중받거나 대우받고 있는 것일까? 기간은 오래되었다지만 그다지 숙성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지역자치도 일어나고 지역분권도 일정 부분 구축되며, 문화분권 차원의 지역학도 우후죽순 범람하는 모양새다.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지역 정체성에 대한 재인식을 하는 과정일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은, 바꾸어 말해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제주도와 진도가 없어지면 한국이 없어진다는 말을 나는 늘 듣고 자랐다. 내가 진도사람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이 말은 안동이나 전주 등 지역정체성이 곧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말이고, 그것이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토대라는 뜻일 것이다. 전통이 잘 남아있는 일부 지역만 그렇다는 게 아니다. 사실은 우리가 사는 지역 모두가 이러한 정체성을 가진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의 어떤 무엇인들 그러지 않겠나. 지역의 문화마다 뿌리 깊은 역사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뿌리 깊은 지역문화를 지나치게 옹호하거나 폄훼하는 사례들이 많다. 전라도 홍어가 대표적이다.

'홍어'에 대한 오해 혹은 중의성(重義性)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아니지 사실은 그 뿌리가 명료하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뿌리일 텐데, 홍어로 비유되는 지역 비하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인터넷상에 범람하는 전라도 지역혐오 표현들 말이다. 장소연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혐오의 문화정치」(한양대 석사논문, 2017)에 의하면, 홍어, 라도, 전라디언, 7시, 알보칠, 까보전, 설라디언, 탈라도, 찌릉찌릉, 네다홍, 홍들홍들 등이 등장한다. 양혜승은 「'홍어'라 호명되는 타자들(others): 네이버 범죄뉴스 맥락에서 전라도 혐오성 댓글에 대한 텍스트 마이닝 분석」(지역과 커뮤니케이션, 2022)에서 지역 혐오성 댓글 5,762개 중 전라도 혐오성 댓글이 4,538개로 78.76%라는 점을 고찰했다. 아예 전라도를 겨냥하여 지역혐오가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전라도 지역을 비하하는 단어로는 7시, 그짝, 그곳, 그지역, 그동네, 해외, 외국, 팡주 등이고, 전라도 사람들을 비하하는 단어로는 홍어, 홍어족, 전라디언, 깽깽이 등이며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조롱하는 단어로는 민주, 유공자, 운동, 성지, 518, 폭동 등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라도는 이질적이므로 사회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차별과 비하, 5.18에 대한 폄훼와 조롱, 전라도 사람은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스테레오타입, 전라도는 강력범죄가 일상인 지역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의 순서로 비중이 높았다는 것이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네이버를 대상으로 삼긴 했지만 댓글 참여자의 약 80%가 전라도 사람들을 타자들(others)로 폄훼한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주지하듯이 타자화(他者化)는 사람의 인격을 대상화하고 물화(物化)하는 일을 말한다. 속된 말로 표현하면 8할에 가까운 댓글부대가 전라도라는 지역과 장소와 사람들과 혹은 선한 의지로 이루었던 어떤 일들까지 맘대로 갖고 논다는 뜻이다.

지역과 신분의 틀림과 다름의 문제

전라도 중에서도 섬에서 태어나면 더욱 그러한 듯하다. 정체도 없고 이유도 알 수 없이 '섬놈'이라고 폄훼한다. 나처럼 전라도의 섬에서 태어나 홍어와 막걸리를 좋아하면 어떤 누군가에게 혐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래서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무서워하고 기피한다. 지금이야 멘털이 강화되었다지만, 전라도 출신임을 숨기는 사례들이 많았다. 이것은 섬놈과 촌놈 담론으로 이어진다. 오래전 내 고향 후배 하나가 선배들과 크게 다툰 적이 있다. 여러 지역 사람들과 함께 어떤 모임을 했던 모양인데, 자기 소개하는 순서가 되자, 다들 목포가 고향이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화가 난 후배가 벌떡 일어나서, "형님! 우리 고향이 조도 거차도 아니요?"라고 소리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고. 선배들이 고향을 숨기는 것에 그 후배는 화가 났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 얘기다. 전라도 중에서도 특히 섬출신에게 가해졌던 폭력이라고나 할까. 지금이야 누구 하나 그런 일이 있겠는가만, 서울에 견주어 지방을 얘기하던 시절에는 출신이나 성분을 숨기던 것이 예사였다. 지역을 폄훼하는 문제는 신분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어처구니없게도 아직도 향, 소, 부곡처럼 사는 곳을 나누어 평가하고 은연중 중앙정부 중심의 헤게모니를 주장하는 사례들이 그것이다. 잘 알려진 고 박병천 명인의 얘기다. 당신의 어머니에게 한참 나이 어린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하고 '하게'체로 비하는 것을 보고 머리채를 잡아다 자갈밭에 굴려버렸다고. 이후에는 당골래의 자식이라고 갖은 곤욕을 당했지만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랬겠는가. 신분의 높낮이가 있고, 계급의 지위라는 게 있어 아이들에게도 공손하게 대하는가 하면 아무리 나이 많을지라도 마구 대하는 그런 전통이 남아있었다는 뜻이다. 인습이자 악습이었다. 그때로부터 채 반세기도 지나지 않는 지금은 어떠한가? 대부분 완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엉뚱하고도 뜬금없이 지역에 대한 폄훼와 인격 모독 등으로 전이된 게 아닌가 싶다. 이를 어찌하나. 그 하나로 나는 지역학을 짊어지고 왔다. 반도를 해만(海灣)으로 바꾸어 읽고, 전라도의 역사를 남도의 웅숭깊음으로 해석하며 남자와 여자가, 불과 물이 바꾸어서는 세상을 꿈꿔왔다. 남도인문학의 기치를 내걸고 10여 년 가까이 글을 써온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과 인격을 대상화하고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현실은 분명히 타개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주문,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필요한 때다.

홍어

남도인문학팁

며느리의 노란새와 시어머니의 닭

서울에 나가 살던 며느리가 오랜만에 시골집에 왔다. 마당에 작은 병아리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어머! 어머! 어머님, 저 노란 새가 무슨 새에요?". 괘씸하게 생각한 시어머니가 대답했다. "*** *새란다!" 공적인 지면이어서 별표로 대신한다. 우리 고향에서 회자 되던 우스갯소리, 남도 사람들은 대개 알만한 욕설 비슷한 답변이다. 행간에 드러난 푼수 며느리라는 해학보다는, 병아리를 매개로 서울말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며느리가 굳이 서울말 즉 표준말을 쓰려고 한 이유 말이다. 욕설을 담아내는 구조이긴 하지만 그 시절에는 적어도 해학이나 골계(滑稽)의 낭만까지 잃어버리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전통시대의 욕설이 가졌던 익살과 격조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이른바 해학이 붕괴된 사회가 되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 현상을 남녀간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보다 더 심각한 파장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해법을 구하는 방식과 실천이다. 이 풍경들을 연구한답시고 에틱적(관찰자적) 관점으로만 접근한다든가, 경제 등의 논리로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일들이 산견된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적어도 호남이나 전라도, 남도 등의 수식을 걸고 인문학이니 분석이니 따위의 연구를 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연구와 실천이 함께 해야 할 명백한 이유이지 않겠는가. 누군가의 폄훼에 대해 시어머니처럼 걸쭉한 욕설 한 바가지를 퍼부어야 하는지, 홍어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따라놓고 호혜평등과 공생공존의 지역학을 생각한다. 폭설 내린 남도 산하가 백옥처럼 희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