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심명자> ‘엄마의 계절’,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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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향기·심명자> ‘엄마의 계절’, 나는 괜찮다!
심명자 대한독서문화예술협회 이사장
  • 입력 : 2023. 01.31(화) 13:07
  • 편집에디터
심명자 이사장
설 명절이 되면 설빔을 입고 어른들에게 다소곳이 세배하며 세뱃돈을 받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친척 어른들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기 위해 어린 우리들의 손목을 잡아끌던 부모님의 채근 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코로나 19의 규제가 끝나고 편히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명절이 돌아왔지만 시끌벅적하던 옛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명절에라도 자식들을 만날 것을 기대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는 부모들은 쓸쓸하고 서글프기 그지 없다.

그림책 ‘엄마의 계절’ (작가 최승훈, 이야기꽃출판사, 2021)에는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나라 어머니가 그려져 있다. 경북 예천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고향집의 어머니를 고스란히 책에 옮겼다. 사계절의 어머니의 일상을 실사 그림으로 그려 마치 곁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림책 속 어머니는 늘 도시에 사는 자식들과 손주들을 기다린다. 어쩌다 온다는 소식이라도 들으면 맛있는 거 먹이려고 전도 부치지만 사정이 생겨 못 온다는 말이 휴대폰을 타고 들려온다. 어머니는 못내 서운하지만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나는 괜찮다’고 씩씩하게 말한다. 만든 음식을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으려고 몽땅 싸서 이내 마을 회관으로 향한다. 여름에 마늘 캘 때도, 가을에 농작물을 거둘 때도 어머니는 자식들이 행여나 올까 하고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다. 호젓한 나날을 보내는 어머니는 자식과 전화 통화할 때만큼은 여전히 목소리가 씩씩하다. 김장김치 담그는 겨울이 돼서야 자식들과 손주들을 품에 안은 것인지 방안에서 웃음소리가 번진다. 얼었던 어머니의 마음도 풀려 훈훈하다.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평생 힘든 목수 일을 묵묵히 해낸 그림책 ‘아버지의 연장 가방’(지은이 문수, 키위북스, 2021)에는 아버지의 자식 사랑이 그려져 있다. 부모는 원래부터 어른이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자식들은 부모에게도 어린 시절이나 고뇌가 가득 찬 청년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가계를 이루면서 자신이 책임져야 할 가족들을 위해 아무리 힘들어도 꿋꿋이 살아낸 아버지의 삶을 알 리 없다. 아버지는 늙어 힘이 없어지고, 외롭게 지내지만 평생 함께 해온 연장가방을 버리지 않는다. 깜깜한 새벽에 나가서 어둑한 밤까지 일을 하다 돌아오던 아버지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삶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알을 깨고 나오는 아기 물고기들이 먹을 것이 없어 죽을까 봐 자신의 몸을 먹이로 내주는 ‘가시고기’와 부모의 존재는 비슷하다. 자식들 마음 고생 시키지 않으려고 고달픈 상황에 자신을 내던지고도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한다. 자식들 역시 삶이 녹록치 않아서 부모님을 살뜰히 섬기기는 쉽지 않다. 부모를 섬기는 마음이라도 간직하는 것마저 고리타분한 옛이야기로 남고, 어쩌면 장차 살아갈 후손들에겐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청소년이 분노 조절을 못해 훈육하는 부모를 폭행하거나, 병든 부모를 돌볼 수 없어 요양원에 맡겨두고 무연고자가 되게 하는 일들이 너무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고액의 보험금이라도 타서 생활고를 만회하려고 부모를 살해했다는 뉴스가 가끔 나와도 이젠 놀라지도 않는다.

고도의 산업화, 서구화된 생활, 핵가족화 등 인정이 메마르고 강퍅해진 이유는 넘쳐난다. 특히 일등 지상주의는 자식이 예의범절을 무시해도 공부만 잘하면 뭐든 용납되며, 집안의 상전으로 군림하게 한다. 부모에게 절대 ‘갑’인 이들이 생활 속에서 부모를 존중하는 기본을 습득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됐을 때의 태도는 불 보듯 훤하다. 이렇게 전근대적 사고방식쯤으로 치부 당하기 십상인 ‘효’는 실상 인간애와 삶의 기본을 익히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다.

몇 해 전, 대전발전연구원에서 ‘효사상의 현대적 의미와 실천·교육방안’을 주제로 현대인의 삶과 효의 연관성을 제시했다. 그 중 하나는 산업화와 효의 관계이다. 성인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 쾌락과 탐욕을 채우며 만족을 하기 위한 돈벌이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을 봉양하고, 가정을 이끌어가기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효를 행하는 것은 지출이 늘어나 경제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행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한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좌표 역할도 한다. 두 번째로 민주화와 효의 관계를 밝혔다. 민주의 가장 기본은 평등이고,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다. 부모를 섬기고, 타인을 배려함으로써 인애(仁愛)의 덕목을 습득하게 된다. 이는 인간애, 형제애, 인류애, 자연애로 이끈다.

전근대 사회는 부모 위주의 집안 풍토가 만들어지고, 부모에게 복종하는 것을 효로 인식했다. 다소 강요가 작용 된 효였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효사상이 형성된 기반이 되기도 했다. 반면, 현대는 부모와 자식이라도 애정을 바탕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대등한 관계의 시대다. 요즘 가족 간의 대화 시간까지 줄여가며 아이들의 학습력을 높이는데 집중하는 부모들이 많다. 자녀의 학습이 생활이고 목표가 돼서 인간애의 형성은 차치해두기 일쑤이다. 개인주의로 살 수밖에 없는 시대일수록 삶의 근본이자 구심점이 되는 가족애는 더 필요하다. 신개념 효의 덕목을 이해하고, 책임감과 인애를 습득하기 위해 부모와 자녀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야 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가족들은 서로를 아끼고 지켜주며, 척박한 현실을 살아가는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다.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