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집에서 모색한 삶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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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집에서 모색한 삶의 향방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
고선주 | 걷는사람 | 1만2000원
  • 입력 : 2023. 02.09(목) 10:04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
“버려진 이불이 전부인 빈집에 머무른다 하늘을 아무렇게나 구겨 넣은 빈집에서 빈 꿈을 꾸고는 개운해졌다”

걷는사람 시인선 76번째 작품으로 고선주 시인의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가 출간되었다. 고선주 시인은 삶을 둘러싼 현실의 그늘을 인지하면서도 세상을 감싸는 한 줄기 온기를 놓치지 않는 끈기 있는 마음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이번 시집은 새로운 삶의 향방을 모색하는 동시에 부재한 집의 부정성으로부터 삶을 지켜낼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동안 펴낸 세 권의 시집에서 한결같이 엿보였던 좌절을 근간으로 한 삶의 깊은 상실이 더욱 분화하고 있는 동시에 일상의 복원을 갈구한다.

시인은 적확하고도 서정적인 언어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모두들 흔들리지 마라고만 말하네/누군들 흔들리고 싶은 사람 있을까”(안락의자)로 시작되는 시가 특히 그렇다. “되레 흔들리지 않기 위해/어느 날 집에 흔들거리는 안락의자 하나 들여놓았다”는 시인은 위로나 공감을 구하는 대신 “여전히 안락의자 위에서/흔들거리는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의 상처와 결핍을 보듬는다.

시인의 고요하고도 진솔한 위로는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시집에 수록된 여러 작품을 통해 형상화되는 ‘집’과 ‘오르막’에 그 힌트가 숨어 있는 듯 보인다. “흙집은 공평하지 않던 세상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기억에서 매몰되던 그 집)라는 말처럼, 시인은 따뜻함을 포기하기 쉬운 현실 속에서도 서정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오로지 시인의 마음가짐으로 “다만 오르막을 오를 때는/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오르막길)라는 진술을 통해 삶을 대하는 시인의 주체적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추천사를 쓴 이병국 시인은 고선주의 시집에서 “세계의 강제로부터 자신을 상실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본다. 또한 “삶에의 긍정은 부정을 부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부정으로 말미암아 현실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있다”고 이야기하며 그의 새로운 시집을 향해 찬사를 보낸다.

‘시인의 말’은 “긴 꿈에서 막 깨어났다”라는 고백으로 마무리된다. 고선주 시인에게 당도한 긴 꿈은 어떤 풍경을 가지고 있을까, 그 꿈에서 깨어난 시인은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게 될까. 이제 시인은 섣부른 위로 대신 우리를 향해 긴 꿈을 넘겨준다. “몸을 기대며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세상”(의자의 해석)에서조차 “온 세상에 하얀 눈이 내리는 것은/때 묻지 않은 사람들이 추워서 떠는 일 없기를 희망한 때문”(사계에 대한 아포리즘적 정의)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는 시인의 따뜻한 여정에 발맞춰 보기를 권한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