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이기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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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AI를 이기는 힘
박상지 정치부 차장
  • 입력 : 2023. 02.13(월) 18:32
박상지 차장
두장의 그림이 있다. 흑백과 컬러, 채도의 차이만 있을 뿐 구도와 내용은 완벽하게 일치하는 그림이다. 흑백그림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에게 무릎을 꿇고 마실 것을 주고 있는 튀르키예 군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다른 컬러그림에는 최근 최악의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튀르키예 아이에게 마실 것을 주고 있는 한국 긴급구호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을 그린 한국인 만화작가 명민호씨는 자신의 인스타 계정에 그림과 함께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에 깊은 애도를 그림으로나마 전한다. 마음만큼은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남겼다. 그림은 12일 현재 ‘좋아요’ 30만개에 댓글도 1만1000개 이상이 달렸다. 댓글에는 한국어, 튀르키예어, 영어 등을 가리지 않고 “정말 고맙다” “눈물이 난다” “결코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담겨졌다.

세계 각국에서도 튀르키예에 온정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튀르키예와 외교적 긴장관계에 있는 나라들조차 지진참사 복구에 나서고, 합법적 통로를 찾아 시리아 반군에게 구호물품이 전달되는 장면을 보면 국가적 비극 앞에선 ‘적’이라는 의미도 퇴색되는 것 같다. 구조현장에서는 매일 기적같은 소식이 전해져온다. 탯줄도 떼지못한 아이가 숨진 엄마 곁에서 구출됐고, 어린 소녀는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 150시간을 견뎌냈다. 만삭의 몸으로 157시간만에 건물 잔해 밖으로 나오는 등 골든타임을 훌쩍넘는 구조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재난 현장의 아픔에 공감하고 기꺼이 동참한 인류애가 만들어낸 기적이다.

재난현장의 반대쪽에선 또 다른 재앙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바로 챗GPT이다. 초거대 AI인 챗GPT의 등장으로 구글이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기존 창업주들까지 소환돼 수차례 비상회의를 진행했을 정도로 챗GPT는 기업을 넘어 인류의 영역까지 장악해가는 중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처럼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춘 이 AI는 사람처럼 대화를 나누고, 기사를 쓰고, 그림도 그리고 심지어 작곡까지 한다. 당황스럽게도 그 수준은 인간을 능가한다. 더 이상 유용한 도구로만 볼 수 없는 챗GPT를 두고 일각에선 부작용을 우려해 일정 분야에서의 활용을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우려를 넘어 공포가 담긴 목소리다.

법이 아닌 어떤 강한 수단이 규제에 동원된다고 해도 AI의 발전은 급속도로 이루어질 것이다. 벌써 챗GPT를 만든 오픈AI에서는 차기모델인 GPT-4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AI와 공존해야 하는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다. 어떤 이는 AI로 인한 인류의 종말을 예견하기도 한다. 희망은 없을까. 있다. 답은 튀르키예 재난현장에 있다. 따뜻한 심장이 없는 기계가 결코 가질 수 없는 보편적 휴머니즘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