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종일> 인간이 지배한 지질시대, 인류세(人類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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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종일> 인간이 지배한 지질시대, 인류세(人類世)
김종일 광주전남연구원 전남도 탄소중립지원센터장
  • 입력 : 2023. 03.09(목) 12:42
김종일 센터장
“우리는 이제 홀로세가 아니라 인류세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 파울 크루첸이 주장한 말이다. 인류세(Anthropocene)란 인류를 뜻하는 ‘anthropos’와 시대를 뜻하는 ‘cene’의 합성어다. 2014년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인류세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환경, 기후, 생태계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간주하는 지질학적 시대”로 정의된다.

지구 역사는 지각변동과 기후변화 등에 따라 나타나는 지질학적 흔적 즉 지층, 화석 등을 기준으로 지질시대를 구분한다. 지질시대의 단위는 가장 큰 것이 누대(累代)이고, 다음은 대(代), 기(紀), 세(世), 절(節)로 세분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질시대는 신생대 제4기 홀로세 메갈라야절에 속한다. 홀로세는 빙하시대가 끝나고 지구가 따뜻해진 시기로 지금부터 약 11,700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메갈라야절은 지금부터 4,200년전에 시작되었다.

인류세라는 말은 지구환경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이 커지면서 1980년대에 유진 스토머가 처음 발표한 용어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였던 크루첸의 영향력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이후 대중매체의 관심을 끌면서 네이처, 사이언스와 같은 과학잡지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인문학 등 전체 학계에서 담론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인류세가 함축한 의미가 기존 지질시대 이름처럼 지질학 범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활동 요소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세가 아직 공인되지 않은 지질시대인 만큼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대표하는 화석은 무엇일까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인류세 시점에 대해서는 인류가 최초로 농경을 시작한 신석기 농업혁명으로부터 생물군 이동과 전염병 확산 그리고 자원수탈의 대항해시대, 18세기 후반 화석연료 사용으로 온실가스가 증가한 산업혁명 이후, 가장 최근의 20세기 중반 핵실험 이후 방사능물질이 확산한 시기까지 다양하다. 인류세를 대표하는 물질로는 대기중 이산화탄소, 방사능물질, 알루미늄, 콘크리트, 플라스틱 심지어는 닭뼈까지 제시되고 있다.

최근 인류세 워킹그룹(AWG)은 인류세의 시점을 20세기 중반으로 정했는데, 이 시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 시스템과 세계 사회경제 지표의 추세와 경향이 극적인 속도로 증가하는 대가속시대(Great Acceleration)와 일치한다. 올해 들어서는 지질시대를 홀로세와 같은 세(世)로 할지 홀로세에 속한 절(節)로 할지, 이를 대표할 표본지를 어느 곳으로 선정할 지에 대해서도 검토중이다. 인류세의 공식화 여부는 워킹그룹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국제층서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게 된다. 학계의 인류세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분명한 것은 인간이 지구환경에 미친 영향이 너무 크다는 것이며, 인류세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지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46억년의 지구 역사를 365일 시간으로 환산해보면, 인류는 12월 31일 저녁 7시에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산업혁명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2초 전에 시작되었다. 수많은 생물이 탄생했다가 멸종했고, 다섯 번의 대멸종도 있었다. 중생대 백악기말에 멸종한 공룡은 지구상에 14일간 머물다 사라졌다, 인류는 공룡보다 더 오랫동안 살 수 있을까? 인류는 영속할 수 있을까? 인류세 논의를 지켜보면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지구에 잠시 머물다 사라질 존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전라남도 탄소중립주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