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심명자> ‘하는 말’과 ‘듣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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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향기·심명자> ‘하는 말’과 ‘듣는 말’
심명자 대한독서문화예술협회 이사장
  • 입력 : 2023. 03.21(화) 15:07
심명자 이사장
요즘은 만나서 대화하는 것보다 전화를, 전화보다는 문자로 의사표현 하는 것이 더 일상적이다. 언어와 비언어인 제스처나 몸짓까지 포함한 다양한 소통 수단을 활용하는 대면 대화와는 달리 문자나 카톡에 의한 소통은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대면 대화가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가치관과 사고방식, 의사전달 방식 등에 차이가 있어 오해를 하기도 하고, 상대를 불신하는 일이 문자나 카톡이 훨씬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림책 ‘빌려준다고 했는데’(글·가사이 마리, 그림·기타무라 유카, 책읽는곰출판사, 2023)는 의도치 않게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을 잘 구현하고 있다. 주인공 렌이 새로 산 공룡도감을 읽다가 공룡을 좋아하는 친구 다이치에게 빌려주러 간다. 만나서 책을 건네 줄 때 공사장 소리 때문에 렌이 말한 ‘공룡도감 빌려줄게’가 ‘공룡도감 줄게’로 다이치에게 들린다. 그림책의 특성대로 이때부터 렌과 다이치의 감정들이 생략돼 있지만, 독자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책을 빌려준 렌은 다이치가 그 책을 보며 좋아할 것을 상상하면서 흐뭇했을 것이고, 다이치는 그 책을 준 렌에게 고마워하며 자기 책이 된 공룡도감을 마음껏 즐길 것이다. 심지어 밑줄도 치고 그림도 그리면서. 갈등은 그 후부터이다. 돌려줄 것을 기다리던 렌이 다이치를 다그친다. 다이치도 줬을 때는 언제고 다시 달라고 하냐면서 렌에게 화를 낸다. 다른 친구의 조언으로 ‘하는 말’과 ‘듣는 말’이 달랐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해의 실마리가 풀린다. 이렇듯 갈등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다만, 갈등을 어떻게 푸는 것인가가 가장 큰 관점이다. 기본적으로 렌과 다이치는 서로를 신뢰하고 아끼는 마음이 크다. 공룡도감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 불안하고 슬픈 것이다. 결국 벤치에 던져버린 공룡도감이 비를 맞아 젖어버릴까 봐 둘 다 공원으로 가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우산을 나눠 쓰고 마주 보며 웃는다. 아무리 오해를 하고 배신감을 느낀다해도, 신뢰감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갈등은 금세 풀린다. 오히려 갈등 이전보다 더 굳건한 우정이 생길 것이다.

‘괜찮아, 나의 두꺼비야’(지은이 이소영, 글로연출판사, 2022) 역시 깊은 우정을 나누던 두 친구의 갈등, 갈등 속에 깊이 숨겨진 진짜 속마음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내성적이고 조용히 지내길 좋아하는 빨강이, 외향적이고 수다스러우며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하양이가 함께 지내다가 문제가 일어난다. 빨강이는 오로지 하양이와 밀착되고, 하양이만 바라보고 있지만 하양이는 늘 다른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른 친구를 초대하기도 한다. 결국 갈등이 생기고 화를 참지 못한 빨강이가 하양이에게 돌을 던진 바람에 햐양이는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빨강이는 극도의 상실감과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다. 의도치 않게 상해를 입혔을 때의 걱정스런 마음과는 다르게 분노가 더욱 고조되기 때문이다. 한참 지나 하양이가 초대한 친구가 찾아와 그동안 하양이가 빨강이를 아끼고 사랑한 내용의 편지를 자신에게 보냈다는 것을 알려준다. 비로소 빨강이는 하양이에 대한 미안함과 소중함이 겹치고 서로 화해하게 된다. 이 작품 역시 아무리 분노해도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을 간직한 속마음을 잃지 않는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상대와의 갈등 때문에 자존감이 무너져 분노가 표출되지만, 상대에게 향하는 심연의 소리에 집중하고 있다.

대체로 사람의 관계는 ‘만남-호기심과 관계 형성-신뢰-갈등-갈등 해소 또는 단절’로 이어진다. 갈등은 관계가 유지되는 상대와 일어나는 것이 기본이다. 아무 관계가 없는 상대와는 갈등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 이것은 서로 가까워질수록 상대에 대한 예의와 매너를 지키고, 존중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상대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우거나 자기 입장과 기분만 내세울 때 서로의 관계는 금이 가기 마련이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뤄나갈 때 갈등은 피할 수 없으며, 갈등을 잘 해소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는가에 달렸다. 이미 갈등이 일어난 경우 다시 신뢰를 회복하고 서로 깊은 마음을 주고 받기 위해서는 처음에 관계를 맺어갈 때보다 몇 배의 노력과 인고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거듭된 불신과 상처를 주고받으며 만신창이가 될 수 있어서 단절을 선택하기도 한다. 결국 서로를 원망하며 분리된다는 말이다.

‘해피어’의 저자 탈 밴 샤햐르 역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과 사회는 갈등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저마다 삶의 습성이 있고, 행동을 선택하는 방법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끌어가는 사람이 있고, 경청만 하는 사람도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룬다. 모두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인정하고 존중하면 첨예한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 갈등이 생기더라도 ‘With me’를 ‘With you’로 전환하는 사고에 익숙해지면 합리적인 갈등 해소가 가능하다고 한다. 성숙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며 행복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긍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말을 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는 말을 새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