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92-2> ‘마한역사의 시작과 끝’ 광주, 역사적 가치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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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92-2> ‘마한역사의 시작과 끝’ 광주, 역사적 가치 커
‘마한문화권’ 광주·전남 상생 아이콘
광주·전남·전북·충청에 54개 소국
‘유기적 연계’ 유네스코 등재 과제
국립마한역사센터 유치가 출발점
  • 입력 : 2023. 03.26(일) 18:49
  •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강기정 광주시장이 16일 오후 광산구 신창동 유적지에서 열린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광주 유치 희망 선포식’에 참석해 민형배 국회의원, 신창동 주민들과 유치 희망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광주시 제공
광주지역이 마한역사의 ‘시작과 끝’이라는 평가 속에 광주시가 마한역사 연계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우선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추진해 마한을 광주·전남 공동번영의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세계문화유산 등재

광주시는 지난 22일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를 위해 문화재청에 신청서를 전달했다.

마한역사문화유산의 연구·홍보를 위한 기관인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는 현재 문화재청이 국비 2억원을 투입해 8월까지 건립타당성 용역을 추진 중이다. 올해 하반기 건립 대상지가 결정될 예정이다. 현재 광주시를 비롯해 전남, 전북, 충남 등의 마한문화권 지자체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최근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광주 유치 희망 선포식을 개최했다. 시는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를 통해 광주, 전남·전북, 충청까지 산재한 마한문화를 연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동안 마한 역사에 있어 광주가 의미있는 지역임에도 불구, 정비 지원 등을 뒷받침 해 줄 ‘마한역사문화권’에서 제외돼 논란이 됐었다. 마한 역사 유적과 관련, 어떠한 지원·혜택도 받을 수 없어 그간 마한유적을 체계화 시키는데 걸림돌이 돼 왔으나, 지난해 6월 마한역사문화권에 광주를 포함하는 개정안이 발의돼 보다 활발한 연구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광주 유치는 마한문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마한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위해서는 연속유산이라는 카테고리로 신청해야 한다. 2개 이상 광역지자체가 함께 하는데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광주와 전남은 마한이라는 역사공동체이자 각자 독특한 문화를 지닌 특징이 있다.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상생 협력의 길을 열고 마한이 꽃피웠던 공동 번영의 시대로 다시 나아가자”며 비전을 제시했다.

●‘시작과 끝’ 광주마한 역사가치 커

광주는 마한역사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중요한 지역이다. 중국 서진 역사가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에 따르면 마한이 2세기 말에 성립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나 고고학계에서는 더 오래전부터 마한이 존재했다고 보고 있다.

광주 신창동 유적은 1963년 서울대학교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 청동기~초기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옹관묘군이 확인됐고 1992년 국립광주박물관의 조사에서는 마한시기의 유구와 유물이 확인돼 마한 성립과 형성, 발전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마한 유적지다. 신창동 유적은 마한이 초기 철기시대가 아닌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고고학계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장고분’은 당초 4세기 마한이 백제에 의해 정복됐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광주에 4기가 남아있는 장고분은 일본의 ‘전방후원분’의 모양과 흡사해 한때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극우인사들이 주장해 온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학계에서 ‘근거 없음’으로 발표하면서 광주 장고분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진행됐다.

학자들은 독특한 장고분의 형상을 백제 남하정책과 일본 야마토 정권의 집권에 따른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백제가 ‘충청-전북-전남’순으로 마한을 정복했고, 난민이 된 마한인은 백제에 복속되거나 남쪽 마한으로 밀려갔다. 나머지는 제3국인 일본으로 망명했다. 일본으로 망명한 마한인은 큐슈 일대에 정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동일본인 야마토 정권과의 전쟁에 패해 6세기 무렵 유일한 마한지역이었던 광주로 이주했다는 설이다.

광주에 거주한 ‘왜계 마한인’은 백제의 남하정책을 적극 방어하는 최후의 마한인이었다. 광주에 거주한 왜계 마한인은 선조때부터 일본에서 답습한 무덤형태인 장고분을 유지하며 부장품은 마한 고유 물건들로 채우는 독특한 양상을 보였다.

광주시 관계자는 “광주 마한의 시작은 최소 청동기 시대 이전부터 시작돼 6세기까지 유지됐었다”며 “광주는 마한 역사의 시작이자 끝인 셈이다. 광주에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가 유치돼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돼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