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민주당, 지금부터 쇄신해도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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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민주당, 지금부터 쇄신해도 늦다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 입력 : 2023. 04.27(목) 13:01
김선욱 부국장
정치권에 잊을만 하면 터지는 사건이 ‘돈봉투’(불법정치자금)다. 지난 2011년 11월, 당시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신문에 칼럼을 썼다. ‘전당대회 유감’이란 글인데, 2008년 한나라당 7·3 전당대회때 돈봉투가 배달됐고 돌려줬다는 내용이다. 글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당 비대위는 검찰에 직접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결과, 3년전 이 사건의 당사자였던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실상 실형을 받았다. 재판부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제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것으로 큰 죄의식 없이 법을 무시하고 돈으로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침해해온 관행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 때 이후로 돈봉투는 사라졌을까.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똑같은 ‘돈봉투 의혹 사건’이 터졌다. 당시 당대표 후보였던 송영길 전 대표 캠프 인사들이 현역의원과 대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돌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돈봉투 전달 정황은 구속기소된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에 생생하게 담겼다. ‘이정근발 판도라 상자’가 열리면서 민주당이 풍비박산날 지경이다. 수년동안 자동녹음된 녹취가 3만개에 이른다고 하니, 앞으로 무엇이 더 터질지는 수사중인 검찰밖에 모른다.

전당대회는 일종의 ‘집안잔치’다. 그래서 후보를 돕는 의원들에게 ‘소정’의 돈봉투는 뇌물이라기보다 활동비나 격려금 정도로 여길수도 있다. ‘교통비, 식비수준의 관행 아니냐’는 말이다. 이런 그릇된 생각이 여의도의 자정과 쇄신을 막아왔다. ‘민주당 돈봉투 사건’은 이전 ‘한나라당 건’보다 훨씬 더 엄중하다. 광주·전남지역 의원 3~4명을 포함해 현역의원 20여명이 적힌 ‘돈봉투 리스트’가 지라시 형식으로 퍼지고 있다. 녹취록엔 송 전 대표와 이정근의 대화도 있다. 대형폭탄 수준의 대화가 추가로 나올 수 있다. 여기에 구속전 작성됐다는 ‘이정근 노트’까지 나왔다. 노트에는 자금(돈봉투) 흐름이 정리됐다고 알려졌다. 검찰수사 확대 과정에서 또다른 ‘메가톤급 이슈’가 터질 수 있다. 대충 봉합해서 끝낼 사안이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앞으로 민주당은 ‘가시밭길’이 훤해 보인다. 수사 선상에 오른 의원들이 한 명씩 소환되고, 검찰 청사 앞에 선다. 물론 대다수가 혐의를 부인하겠지만, 이런 모습이 반복적으로 비춰지면 부패·비리 이미지로 덧씌워지는 건 당의 얼굴이다. 체포동의안도 국회로 넘어올 게 뻔하다. 돈봉투 전달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윤관석·이성만 의원을 시작으로, 녹취록에 실명이 나온 의원들의 혐의가 인정되면 그 수는 점점 더 늘어난다. 그 때마다 표결해 가결과 부결을 결정해야 한다면 끔찍스런 일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2차 체포동의안이 제출되더라도 정치 검찰의 음모라느니, 야당 탄압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렵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검찰 수사의 칼 끝은 전대와 이후 대선 경선과정에서 송 전 대표와 이재명 대표간 연결고리를 찾는 쪽으로 향할 것이다. 자신의 지역구(인천 계양을)까지 물려줬던 전직과, 이를 받은 현직 당대표 모두 사법리스크에 휘말리는 ‘외통수’에 걸렸다. 적어도 수개월에서 1년 정도 수사가 계속되고, 민주당에 희망을 기대했던 중도 성향의 당 지지자들은 속속 돌아설 것이다. 이렇게 당의 운명을 검찰의 손에 맡길 것인가.

당의 간판을 내리고 새로 출발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소속 의원을 구하고 당을 잃을 것인가. 당장 관련 의원들에 대한 출당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발본색원 차원에서 진상조사기구를 띄우고, 필요하면 의원 전수조사도 해야한다. 부패고리,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단절하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라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의식해 쇄신의 칼을 꺼낼수 없다면 그 자리에 앉아있을 이유가 없다. 돈봉투 의혹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박순자, 김현아 전 의원 수사를 꺼내며 여권 인사로 시선을 돌리려는 듯한 태도는 답이 아니다. ‘무뎌진 쇄신의 칼’로는 이 위기를 넘어설수 없다.

반성과 성찰, 완전히 새로운 민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재창당 수준의 쇄신과 공천 혁신, 정책정당 강화가 그나마 선택할수 있는 길이다. 돈봉투 의혹 관련자들은 공천 물갈이 대상이다. 녹취록에는 복수의 호남지역 의원 이름이 나오고, “호남은 (돈봉투) 해야 된다”는 발언이 있어 광주·전남역시 물갈이의 진앙지가 될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차떼기 사건과 돈봉투 사건 이후 박근혜 당대표가 천막당사를 하면서 신뢰를 다시 쌓아갔다. 14년간 써왔던 당의 간판도 바꿨다. 이후 큰 선거를 연달아 이겼다. 그만큼 처절하게 반성하고 거듭났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은 도덕성이다. 도덕성을 다시 세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국민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해야한다. 쇄신하느냐, 아니면 쇄신당하느냐는 당 대표의 선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