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창·하정호> 낭패 보지 않는 광주교육 시민협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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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창·하정호> 낭패 보지 않는 광주교육 시민협치를 위하여
하정호 광주시교육청 시민협치기후환경과장
  • 입력 : 2023. 05.07(일) 14:21
하정호 광주시교육청 시민협치기후환경과장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채로 광주교육시민협치진흥원이 설립추진단으로 출범했다. 시교육청은 그동안 추진단을 통해 “협치진흥원 설립의 전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해 기관의 비전, 목표, 운영방안 등 내용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해 왔다. 이제는 말빚을 갚아야 할 때다. 오는 11일에 열리는 ‘광주교육 정담회’가 그 첫 자리가 되면 좋겠다. 순천에서 시작한 정담회는 시민들이 주도해 매달 여는 공론장이다. 두 번째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비타민센터에 모여 교육문제들을 이야기한다. 이번 달로 52번째다. 다음 달 정담회에서는 이번 토론 내용이 어떻게 행정에 반영되는지 실무협의회에서 논의한 내용을 보고받는다. 행정이 당장 수용해주면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 막힌 부분을 함께 고민해볼 수 있으니 또 좋다. 특정 세력만이 아니라 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니 더 좋다. 신뢰 없이는 협치 없다. 각 시도에서 여러 다양한 협치기구를 만들어 운영하지만, 상호신뢰의 구조까지 모색하는 경우는 드물다. 행정과 시민이 서로 정답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으면 서로에게 믿음이 생겨 좋다. 그 믿음이 협치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자리로는 협치진흥원의 비전과 목표, 운영방안까지 합의해 내기가 어렵겠다. 크고 작은 광주교육의 문제들을 깊이 이야기하기에도 버겁다. 그래서 또 다른 시민협치의 길을 생각해 보았다. 시흥시에서는 570여 시민들이 시흥혁신교육포럼에서 14개 분과로 나뉘어 토론을 한다. 광주에서도 ‘광주교육 시민협치회의’를 열어보면 어떨까? 각 학교에서 추천받은 운영위원과 단체에서 추천받은 사람, 원하는 시민들이 각 분과에 소속돼 원하는 만큼 토론을 벌여보자. 방학중급식, 방과후학교, 마을돌봄, 학교돌봄, 기후위기 대응, 학교폭력 대응, 공립대안학교, 고교학점제 준비, 지자체 주도의 대학지원체제(RISE) 등 시민의 지혜를 구하고 협조를 얻어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각 분과에서 시민과 행정이 함께 공부하고 자원들을 엮어가며 하나둘 실천해 보자. 역할극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풀어가도 좋고, 행정과 시민이 함께 배움여행을 가도 좋다. 한 가지 주제로 여러 차례 워크숍도 열고, 어느 하루는 아무 일 없이 한가로이 풀숲을 거닐어도 보자. 협치진흥원에서는 ‘광주교육 협치학교’도 열고 ‘시민 소통의 날’도 준비할 생각이다. 예산을 세워 ‘소통협치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면 정담회와 시민협치회의의 진행상황도 실시간으로 전하며 더 많은 시민들과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이 합의한 교육의제들은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여론수렴을 거쳐, 교육감과 시민이 공동대표로 회의를 주재하는 ‘광주교육 시민협치위원회’에 의안으로 올릴 수도 있겠다.

그동안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원탁토론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행정 없이 시민들만 모여서 두어 시간 행사 치르듯 의견을 모으고 나면, 그건 이미 행정이 하고 있다는 답변을 듣기 일쑤였다. 그나마 그런 되먹임조차 없이 요식행위에 그친 경우도 많다. 여러 이해관계가 뒤섞이는 절차와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당위만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 행정도 시민들에게 열려 있어야 하지만, 시민 또한 의견 제시에 앞서 교육현장을 이해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협치를 위해서는 공식적인 자리보다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서로 자주 만나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래도 공식적인 자리는 딱딱해서 앉아 있기가 불편하고 서로의 말에 날이 서 있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미 불거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담당자를 불러 세우는 불편한 자리보다는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다독이는 편안한 자리가 늘어나면 좋겠다. 크고 작은 관계망들이 서로 엮이면서 행정의 제도와 어우러져야만 제대로 된 협치가 가능하다. 시민의 자치 없이는 협치도 없다.

담당자를 만나기보다 결정권이 있는 ‘윗 대가리’를 찾아가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권위주의 통치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일을 하면서 ‘민주주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윗대가리를 갈아치운다고 해서 ‘민주화’되는 것도 아니다. 최고 윗대가리를 끌어내려도 보았고 뽑아올려도 보지 않았나. 그런다고 우리 교육이 얼마나 바뀌었나? 그 결과는 허망했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는 그 낭패감의 귀결이다. 낭패(狼狽)라는 한자어는 뒷다리가 없는 이리(낭)와 앞다리가 없는 이리(패)가 서로 한몸으로 붙어 있는 상상 속 동물에서 따온 말이다. 마음에 맞지 않아 한몸이 따로 떨어지면 ‘낭패를 보았다’고 한다. 협치는 낭패와도 같다. 시민들의 앞다리는 욕심껏 달려보려 하지만 행정의 뒷다리는 이리저리 살피느라 굼뜨기 마련이다. 세워놓은 예산이 없어 당장 할 수 없는 일도 많다. 낭패가 한몸으로 움직이려면 호흡부터 서로 맞추어가야 한다. 시민과 행정의 뜻이 온전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작은 일부터 함께 하며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행정이 자기 마음에 드는 시민들과만 한몸으로 움직이는 것은 분할통치일 뿐, 협치가 아니다. 협치는 합치가 아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소걸음으로 천 리를 걷는 것이 협치의 길이다. 교육감 하나 바꾸고서 모든 일을 그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런 쉬운 일은 이제 그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