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취재수첩> 교과서 밖의 5·18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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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전남일보]취재수첩> 교과서 밖의 5·18이 필요하다
강주비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3. 05.16(화) 16:04
강주비 기자
1980년 5월 광주에 살던 한 평범한 여고생은 전남도청에 널브러진 수십구의 시신을 마주했다. 피와 오물로 범벅이 된 처참한 시민들의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던 그는 자원해 시신을 닦고 장례를 도왔다.

시신은 끊임없이 늘어났고, 관이 부족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여고생은 관을 구하기 위해 주저 없이 화순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주암마을을 지날 무렵, 인근에 매복해 있던 계엄군이 버스를 향해 발포했다. 여고생의 몸에는 7발의 총탄이 박혔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던 그는 ‘그 날’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했다. 송원여상(당시 신의여고) 3학년을 다니던 박현숙 열사의 이야기다.

현재 송원여상에 박 열사의 흔적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후배들은 민주화를 위해 계엄군의 총탄에 스러진 선배를 기억할까. 답을 찾기 위해 최근 박 열사의 언니 박현옥씨와 함께 송원여상을 찾았다.

사실 취재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은 박 열사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5·18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은 세대도 아닐뿐더러, 역사에 크게 관심이 있지 않은 한 열사 한 명 한 명을 다 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이날 만난 학생들은 모두 추모비 앞에 고개 숙여 ‘정말 감사하다’고 진심 어린 투로 말했다. 박씨로부터 박 열사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눈물을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후배들은 43년 전 국가로부터 희생된 선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교정 한편에 세워진 추모비의 역할이 컸다. 등하굣길에, 점심시간에, 학생들은 추모비를 통해 박 열사를 보고, 기억했다.

반면, 같은 재단이지만 김기운 열사의 모교인 송원고등학교는 상황이 달랐다. 그곳에는 그를 기억할 만한 어떤 기념 공간도 없었다. 불과 15분 거리에 있음에도 모교 출신 열사를 기리는 방식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추모비 하나에 ‘그날’을 다 담지는 못하겠지만, 송원여상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기념 공간의 존재가 적어도 교육과 정신계승의 측면에서 효과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학생들이 교과서 끄트머리 한 페이지가 아닌, 일상에서 5·18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 당국이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