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전일광장·박성열>영화 ‘택시 운전사’와 아빠의 눈물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전일광장·박성열>영화 ‘택시 운전사’와 아빠의 눈물
박성열 숭실대 숭실평화통일연구원 교수
  • 입력 : 2023. 05.21(일) 14:00
박성열 교수
6~7년 전인가 ‘택시 운전사’라는 영화가 상영됐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서울의 한 택시 운전사가 광주를 취재하러 온 외국인 기자를 태우고 광주에 가게 되면서 겪게 된 여러 상황을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 평소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20대 아들과 같이 보게 됐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아들과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던 도중 눈물이 터져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나는 당황해 가능한 아들이 모르게 살짝살짝 훔치곤 했으나 아들은 눈치챈 것 같았다. 1980년 5·18 당시 나는 광주에서 고3으로 자취하고 있었다.

5·18이 발생하고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고 도서관 등 모든 곳이 닫혀 공부하러 갈 곳도 없었다. 나처럼 시골에서 올라와 광주에서 자취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매일 도청 광장으로 나가 시민 궐기대회를 보거나 시내를 돌아다녔다.

당시 광주에서 살고 계시던 사촌 누님댁에 형제들이 피해 있기도 했다. 5월 26일 그날도 친구와 도청 앞에서 열린 시민 궐기대회에 나갔다. 그런데 그날은 분위기가 조금 비장했다. 시민대회가 끝난 다음 계엄군이 곧 들어올 수 있다며 시민 대표단이 앞장서고 상무대쪽으로 행진하게 되었다. 친구와 나도 대열에 합류해 금남로를 거쳐 농성동까지 나아갔다.

상무대쪽에 탱크, 장갑차 같은 것이 보이고 행진했던 시위대와 군인들이 상당한 거리를 두고 대치하였다. 시민 대표단과 군인들이 만나 무언가 얘기들을 하고 시위대는 다시 도청으로 돌아왔다.

시위대 수는 많이 줄어있었다. 다시 도청 분수대 연단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내일 계엄군이 들어올 것 같으니 같이 도청으로 들어가 지키되, 함께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돌아가라고 하였다. 친구와 나는 하루 종일 돌아다녀 배도 고프고 어쩌면 겁도 나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계엄군이 도로 곳곳에 들어와 있었고 세상은 바뀌어 있었다.

함께 자취하던 누나와 나는 며칠 뒤 간신히 시골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부모님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 달여 휴교가 끝나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대입 예비고사 일정이 얼마 남지않아 그런대로 공부에 전념해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취직을 해 가정을 꾸리고 살아 왔다.

살아오면서 5·18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으나, 내가 경험한 일들은 누구에게 얘기할 것도 아니었고 그냥 내 안에 기억으로 묻혀 두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영화속에서 30년이 훌쩍 넘은 그 당시의 모습들이 재현된 장면들을 보면서 뭔가 내 안의 깊숙한 곳에 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당시 10대 후반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분노와 서러움과 미안함과 두려움과 무력감 등 복잡했던 감정들이 터져 나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5·18은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됐으나, 아직도 정치적 공방이 벌어지곤 한다. 그러나, 진실은 당시 광주에 살아 모든 것을 보고 경험한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과 마음속에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제는 5·18 당시 나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아들에게 내가 겪은 5·18을 간단히 얘기해주었다. 아들은 아빠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까? 세월이 많이 흘러도 5·18 당시의 기억들은 여전히 내 안에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