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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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병어
박상지 정치부 차장
  • 입력 : 2023. 05.24(수) 17:54
박상지 차장
강원도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열일곱살 소년·소녀의 애정을 토속적인 언어와 해학으로 그린 김유정의 대표작 ‘동백꽃’은 중학생들의 필독서다. 작품속 주인공인 ‘나’는 순박하다 못해 어수룩한 소년으로 묘사된다. 이에 비해 점순은 활달한 성격의 말괄량이 소녀다. 소년에게 관심이 있는 점순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라며 구운 감자를 주면서 접근한다.

먹을거리가 흔한 세상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감자는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다. 특히 봄에 심어 초여름부터 수확하는 감자는 가을·겨울감자보다 맛있다. 봄 감자의 70%를 차지하는 품종은 수미다. 재배가 쉬운 탓도 있지만, 전분기가 적어 카스테라처럼 포슬포슬한 식감 때문에 인기가 높다. 감자는 쪄먹어도 그만이지만,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칼칼한 생선조림이다. 이맘때부터 여름까지 잡히는 병어와 수미감자의 조합은 미식가들이 꼽는 환상의 음식궁합이다. 여름이 제철인 병어는 목이 짧고 입도 튀어나와 볼품 없지만 영양가 만큼은 어떤 생선에도 뒤지지 않는다.

살이 연하고 부드러운 병어는 원기 회복과 면역력 강화에 좋다. 단백질, 비타민, 타우린에 오메가3까지 풍부해 동맥경화 등 성인병 예방에도 탁월하다. 병어를 면역 비타민이라고 부르는 충분한 이유이다. 특히 여름철 병어는 산란기인만큼 그 맛과 영양이 훨씬 풍부하다.

수미감자와 병어를 넣고 매콤한 양념으로 자작하게 끓여낸 병어조림을 먹을 땐 젓가락보다 숟가락을 쓰는 게 낫다. 젓가락질 고수라도 야들거리는 병어살과 포근포근한 감자를 젓가락으로 집기란 쉽지 않다. 매콤한 양념을 숟가락으로 서너 차례 병어에 끼얹은 뒤 양념이 밴 살점과 감자를 떠 흰 쌀밥과 함께 먹는 것이 병어조림을 먹는 정석이다. 때로는 잘 구워진 파래김에 싸 먹어도 별미다.

한 가지 아쉬운 건 가격이다. 병어는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 비싼 생선으로 유명하다. 올해는 어획량까지 줄어 마리당 수 만원은 줘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철 보양식으로 4인가족이 먹으려면 적지 않은 돈을 가져야 하니, 서민들이 병어조림의 호사를 누리려면 ‘큰맘’을 먹어야 한다. 그래도 올해는 가능하면 병어요리를 자주 먹으려 한다. 어쩌면 올해가 안전하고 맛있는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마지막 해가 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올 여름 본격 방류될 예정이라고 한다. 방사능 오염수의 방류기간은 최소 30년이 될 전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방류기간이 이번 세기를 넘어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등 우리 몸에 들어와 각종 암을 일으키는 물질들은 무거워 바다에 쌓이게 된다. 방사능 물질로 범벅된 침적토는 어패류, 해조류, 갑각류 그리고 어류들이 둘러쓴다. 그 맛있는 병어도 예외가 아니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기정사실화되면서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은 애써 처리수라고 강변하지만 분명한 오염수다. 국제사회가 합의한 방사선 방호 원칙에서의 정당성과 해양 보호를 위한 국제법을 준수해 엄격한 검증과 감시로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