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글로벌에세이·최성주> 핵위협의 시대… 동맹과 국제공조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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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글로벌에세이·최성주> 핵위협의 시대… 동맹과 국제공조의 중요성
최성주 원자력대학원 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76) 우크라 전쟁으로 고조되는 핵위협
  • 입력 : 2023. 05.29(월) 14:17
최성주 교수
작년 2월24일 러시아의 불법침공으로 야기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쯤 종료될 지 알 수가 없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 대륙에서 21세기에 러시아가 시작한 살육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유엔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 헌장으로 대표되는 국제관계의 기본질서와 규범을 파괴한 러시아의 불법행위는 에너지 및 식량 위기 등으로 인류 전체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의 전술핵무기 사용 위협 및 러시아 군대의 우크라이나 원자력발전소 점령 등으로 핵 위협은 고조되고 있다.

유럽 대평원에 위치하고 있어 ‘세계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우크라이나는 동서냉전이 종식된 이후 1991년 소련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달성한다. 냉전 시대,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영토에 상당한 규모의 소련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들 3개국이 독립하자 1968년 핵비확산조약(NPT)을 창설한 미국과 영국, 소련(러시아)은 이들 3개국에 소재한 핵무기를 러시아로 반환하는 대신 핵무기 불사용을 통해 안전보장과 영토보전을 약속한다. 이것이 ‘부다페스트 의정서’인데 법적 구속력은 없는 정치적 선언이다. 그러나 작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부다페스트 의정서는 한갓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주권국가의 안전보장은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조약)로 규정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전쟁 양상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과 국민들의 영웅적 항전으로 푸틴 대통령의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러시아군이 곳곳에서 패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러시아는 작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을 강행할 당시 수도인 키이우 함락 등을 통해 속전속결로 승리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대규모 무기 지원에 힘입은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대응과 반격으로 러시아는 상당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푸틴은 전황이 불리할 경우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한다.

또한, 러시아의 동맹국인 벨라루스의 루카첸코 대통령은 5월25일 러시아로부터 전술핵무기를 이전받을 준비를 마쳤다고 언급하고 있다.

1945년 등장한 핵무기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 1발씩을 투하한 이후 지금까지 실제로 쓰인 적은 없다. 끔찍한 살상을 초래한 핵무기에 대해 국제적인 금기(taboo) 여론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이 핵무기를 선제사용할 경우 그 이후에 발생할 모든 결과에 대해 푸틴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이번 전쟁으로 미-러 군사안보 환경이 전반적으로 악화되면서 양국 간 핵무기 감축조약의 장래에도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양대 핵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는 동서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이래 다양한 방식으로 핵미사일을 감축해왔다. 이러한 핵감축 노력은 그때그때 안보 환경에 영향을 받았으며 그 결과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미-러 핵감축 조약은 뉴스타트(New START)다. 현행 뉴스타트 유효기간은 2026년 초까지이므로 후속 조약에 대한 협상을 속히 개시해야 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미-러 간 대결과 긴장으로 협상에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푸틴이 지난 2월말 뉴스타트 참여를 일방적으로 중단함에 따라 앞으로 전개될 양상이 더욱 우려스럽다.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유럽 최대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하고 시설 일부를 전투 목적으로 쓰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자포리자 원전의 안전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전투 과정에서 원전 핵심시설인 원자로가 손상될 경우 대규모의 방사능이 유출돼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 대재앙을 초래하고 자연환경도 훼손될 것이다. 민간용 원전에 대한 무력공격이 헤이그법 등 국제인도법으로 금지된 이유다. 가까운 장래에 개시될 것으로 예견되는 우크라이나의 총반격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수 있음에 따라 자포리자 원전의 안전 확보 문제가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각도로 핵위협을 가중시키고 있다. 격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한반도 안보 정세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대처해 나가야 한다. 동맹국 없이 러시아에 대응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켜보며 한미동맹의 소중함을 재인식 한다. 70년 전 1953년 미국과 군사동맹조약을 체결해 안보를 공고하게 다져놓은 이승만 대통령의 높은 혜안과 전략적 비전에 재삼 존경을 표한다. 우리가 처한 국가안보 상황에서, 자강과 동맹, 국제공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