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전일광장·이재남>교육감에게 혼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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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전일광장·이재남>교육감에게 혼나던 날
이재남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책과장
  • 입력 : 2023. 05.29(월) 14:18
이재남 정책과장
교육청 간부 역할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압박을 받는다. 일종에 스트레스다. 그 영역은 크게 다섯 가지 정도 된다. 언론, 의회,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지속 민원 같은 것들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공익 갑질(?)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어쩌면 본래 사명일 수도 있다. 공무원 노릇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늘 이 영역들로부터 긴장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의회 관련해서 교육감으로부터 많은 질책을 받았지만, 어느 날 크게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그날은 본회의가 있는 날이었고, 담당국장이 불려 나와서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는 시간이 있었다. 의원은 준비해온 질의서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교육행정에 대해 질타를 했다. 답변 도중 내 의견이라도 덧붙일 요량이면, “ ‘예’, ‘아니요.’로 대답하세요” 하면서 불호령이 계속되었다. 이럴 때 정답은 정해져 있다. “죄송합니다. 시정 하겠습니다. 충분히 검토해서 다시 제출하겠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다시 검토하겠습니다. 등등”

땀을 흘리며 답변을 하던 중 갑자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의원이 지적하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가 추진하려고 했던 기본 철학도 틀린 것이 아닌데, 너무 일방적인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답변을 강요한다는 생각이 솟구쳐 올랐다. 질문이 진행되던 중간에, 말을 끊고 나섰다. 배에 힘을 주었다. “아니 의원님, 의원님 생각도 일리가 있지만,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교 현장을 잘 모르시니까..... 아니 제가 말씀 드린다고요... 어떻게 일방적으로 한편을 들어서 행정을 합니까? ….” 약간의 실랑이 비슷한 공방이 오갔고, 나는 한순간도 지지 않으려고 약간의 오기(?)를 부리며 댓거리를 했다. 어느 순간 정적이 흘렀고, 의원은 그 후 나에게 답변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땀을 흘리며 답변시간을 보내고 내려왔다. 본회의가 끝나고, 나는 할 말을 했다는 생각에 잠시 우쭐한 생각도 들었다. 그때였다. 교육감이 본회의장 한 쪽에, 배석한 간부들이 있는 가운데 나를 불렀다. 그리고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 이봐 이 국장, 자네는 의원들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해. 이 사람아, 시민을 대신해서, 다른 의견이지만 목소리를 내고, 집행부를 향해서 질타하고, 제안도 하고 이것이 의원의 역할이야. 기본적으로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지. 일단 얘기를 경청해서 잘 듣고, 그다음에 할 말이 있으면 해야지. 왜 중간에 말을 끊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네한테 오해를 하는 거야. 우선 더 낮은 자세로 경청할 줄 알아야지. 상대도 존중을 해주지. 그게 뭐야!” 그날 이후 나는 의회 답변에 대한 무서움 증이 생겼다. 한동안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 밤잠을 설쳤던 적도 있었다. 교육감에게 혼나던 날의 순간을 지금도 생각하곤 한다. 여전히 그런 태도에 대한 찬반의 의견이 있다. 호불호 관계에 따라, 공격적 태도를 주문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상 그들도 속으로는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 교육감에게 혼나던 그 순간을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정당화하기도 했고, 되짚어 생각해보기도 했다. 누군가 민주주의를 경청의 공동체라고 했다. 교육감에게 혼나면서 나는 경청의 자세에서 설득의 힘이 나온다는 소중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 TV에 중계되는 국회의 모습을 볼 때마다 떠오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