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작가 에세이·김면수> 와이로(蛙利鷺)…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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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작가 에세이·김면수> 와이로(蛙利鷺)…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김면수 시인·대한파크골프광주시연맹회장
  • 입력 : 2023. 06.01(목) 12:30
김면수 회장.
올해도 벌써 절반의 시간이 흘러간다. 그야말로 유수와 같은 세월이다. 가는 봄이 아쉬워 며칠 전 지인들과 약속한 광주 북구 말바우 시장으로 향했다. 서민들이 진솔한 삶의 현장 속에서 소박한 풍요로움으로 어울림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전통시장내 횟집이었다. 싱숭생숭한 정국 때문이었을까. 그 날의 대화 주제는 정치, 경제, 사회를 넘나들며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고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는 분위기로 뜨거웠다. 생각의 차이로 작은 갈등도 있었지만 지속적인 만남으로 이어지는 지인들은 정부의 외교 정책과 모 정당의 돈 봉투 사건에 관한 이야기까지 의견이 분분 했다. 결론이 날리 없었지만, 요즘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 설정에 대해 근본적인 쇄신이 필요 하다는 데는 모두 공감했다. 무슨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봉투가 필요 하다던 고교 동창생 친구 이야기가 문득 떠 오른다.

고려시대 의종 임금이 야행(夜行)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을 헤매고 있었다. 겨우 민가를 발견하고 하루 밤을 청했지만 집주인은 거절 하면서 조금 더 가면 주막이 있으니 그 곳으로 가라고 했다.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그 집 대문에 붙어 있었던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도대체 개구리가 뭘까. 개구리가 뜻하는 걸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임금은 주막을 찾아 주모에게 외딴 집에 대해 물었다.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한 후, 집안에서 책만 읽으며 살아 간다는 게 주모의 대답이었다. 궁금증이 더 커진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찾아가 사정한 뒤 하룻밤을 묵게 됐고 궁금했던 ‘유아무와 인생지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옛날에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노래에 소질이 없는 까마귀가 살고 있었는데, 꾀꼬리는 늘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즐겼다. 어느 날 까마귀가 꾀꼬리에게 노래 대회를 제안 했다. 꾀꼬리는 어이가 없었지만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노래 시합에 응했다. 그리고 3일의 연습기간 동안 꾀꼬리는 열심히 노래 연습을 했다. 하지만 정작 시합을 제의했던 까마귀는 연습은커녕, 들녘 논두렁에 나가 개구리만 잡으러 돌아 다녔다. 약속한 3일이 되어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 시합을 하였다. 심사위원으로는 이웃 마을 백로를 초청했다. 꾀꼬리는 승리를 장담 했다. 하지만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까마귀가 백로를 ‘개구리 뇌물’로 매수했기 때문이었다.

덧붙여 집 주인은 개구리 와(蛙),이로울 이(利), 백로 로(鷺), 즉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라고 했다. 실력은 있는데, 돈이 없고, 정승의 자식도 아니다 보니 매번 과거에서 외면 당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까마귀가 백로에게 개구리를 상납한 것처럼 뒷 거래를 하지 못해 과거에 번번히 낙방한 것 이라고도 했다.

임금은 하룻밤 서생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품격과 지식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임금은 자신도 과거에 여러 번 낙방했지만, 며칠 후에 실시될 임시 과거는 공정하게 실시된다고 하니, 지금 긴급하게 개성으로 올라가는 중이라면서, 과거에 응시해 보라고 권유했다. 궁궐에 돌아온 임금은 즉시 임시 과거를 열 것을 명하였고, 과거의 시제를 ‘유아무와 인생지한’이란 여덟 글자로 출제 했다. 서생은 장원급제했고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고려 중기 문관 이규보 선생의 이야기다.

우리의 삶은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남의 연속이다. 다양한 사회에서 만남과 대화는 필수 일 것이다. 요즘 세계 각국마다 경제적 득실을 저울질 하면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외교전에서 강대국들의 말 없는 와이로가 있지 않는지, 또 한편으로 국내·외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와이로를 묵인 하고 있지 않는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서로가 배려하고 존경하면서 정정당당하게 행동해야 한다. 대다수 사람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성실히 임하면서 자신의 맡은 역할과 업무를 묵묵히 처리한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 우리 사회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돈이 있으면 무죄고 돈이 없으면 유죄라는 뜻이니 와이로의 의미와 딱 맞다. 이규보 선생이 가신지 800년이 지난 지금, 경제강국과 외교대국을 이야기하는 대한민국에 여전히 와이로가 횡행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