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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교육의창·노영필> 인불학부지도人不學不知道
노영필 철학박사
  • 입력 : 2023. 06.04(일) 14:14
노영필 철학박사
“공부 잘 해야 면서기 하더라.”

한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공부에 관심없는 사람의 질투어린 말일까. 공부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일까. 공부와 상관없이 사회생활을 잘 한다는 의미라면 꼭 죽도록 공부할 필요가 있냐는 비아냥일테다.

그나마 요즘에는 더 안 맞는 말이다. 대학원까지 코피쏟으며 공부해도 9급공무원 합격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세상이다. 어떻게 설명하더라도 공부는 곧 취업이다.

공자는 공부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남달랐던 공자는 묻고 또 묻다가 나중에는 자기에게 오히려 물어오는 사람들이 생기더라고 했다. 공부의 달인으로 성현이 된 셈이다.

오늘날 아이들이 하는 공부는 진학이고 취업이다. 아이들에게 물으면 열이면 열이 하는 대답이다. 공자가 말한 궁금한 것을 알아가는 공부, 인격을 연마하는 것과는 너무 다른 태도다. 아이들이 지겨워할 수밖에 없는 공부인 이유다. 놀기보다 공부를 싫어하는 생존 경쟁에서 허우적대기 싫은 것이다.

놀면서 재미나게 공부할 수 없을까? 공자가 말한 묻고 찾는 공부는 없을까? 공부가 삶을 윤기나게 만드는 역할은 할 수 없을까?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상, 여우의 거짓말같은 이솝우화가 일상인 세상, 들키지 않고 속이고 속이는 힘을 길러야 생존할 수 있다는 세상에서 진짜 공부는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힘을 키우는 일이다. 웃프게도 현실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비극은 거짓말을 하고도 거짓말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때다. 거짓말이 참말처럼 통하면서 거짓말이 뻔뻔해지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는 chat-gpt나 AI의 힘을 빌려 쉽게 할 수 있지만 참과 거짓말을 분별하는 양심적인 힘은 사람 몫이다.

옛날에는 모르고 하는 거짓말은 나쁘지 않다고 했지만 거짓말은 모르고 할 때 더 위험한 세상이 됐다. 거짓말 속에 사는 사람들은 거짓말이 참말이다. 일상의 버릇을 넘어 정당화논리로 굳어진 거짓말은 정말로 나쁘다.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게 정상인데 아이러니다.

필자는 교육의 역할을 강조하는 “옥불탑불성기, 인불학부지도”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옥은 다듬지 않고 그릇이 될 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고 도리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거기다 한술 더 뜬 것은 포기문화의 확산이다.

공부가 다듬는 일이 아니라 성취의 수단이 되면서 사람이 갖춰야 할 도리와는 상관없어진 셈이다. 9수 10수로 고시를 통과했지만 무슨 가치를 지향하고 무엇을 공감하고 살아야 할지는 필요없어진 최종성취가 공부를 정의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위태로워진 이유다. 귄위주의 시대의 통제와 억압보다 더 무서운 것은 참과 거짓을 배울 수 없는 공부를 강요하는 세상이다. 더 큰 거짓말을 막기 위해 국가권력까지 동원되면서 당당하게 거짓말로 덮어도 된다는 것은 교육의 실종을 예고하는 것이다.

면서기를 비아냥대지 않는 세상, 장사치를 손가락질하지 않는 세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찾고 채워가는 삶을 살도록 뒷받침해주는 사회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옥을 쪼아 그릇을 만들듯 공자처럼 되물으면서 옳바른 가치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힘을 키워 옆 사람들의 고통을 같이 볼줄 알아야 한다. “인불학부지도”의 힘을 키우려면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사람되는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