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고·장경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의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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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기고·장경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의 신념
장경화 광주문화재단 이사
  • 입력 : 2023. 06.06(화) 14:37
장경화 이사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주제인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노자’의 ‘도덕경’에 함축된 사상을 차용한 것으로 나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다. 예술감독(이숙경)은 4가지 소주제를 통해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어떻게 현대미술로 담아내고자 하였을까? 그리고 이번 광주비엔날레가 던져놓은 미학적 화두가 어떠한 담론과 함께 사회문화, 교육적 반향을 예측했을까? 더더욱 5월 광주와는 어떠한 코드로 소통을 기대했을까?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1전시장은 입구부터 무겁고 검은 침묵의 두려움이 천장에서 바닥까지 위태롭게 세워진 굵은 밧줄과 함께 불안한 숲을 이룬다. 숲길을 따라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바닥의 커다란 수족관과 양 벽면 대형 스크린에 흑인 여성은 남아공 전통 무술적 몸동작을 통해 삶과 죽음의 매개자로 영혼을 위로하는 원초적 퍼포먼스로 첫 장을 열었다. 다시 5월 광주의 망자들을 전시장으로 불러드리자는 것처럼….

첫 번째 소주제인 ‘은은한 광륜’은 80년 5월 광주를 직접 목도하고 체험한 작가와 체험하지 못한 작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광주와 교감을 통한 현재적 시점의 재해석을 통해 미학적 저항과 시대를 기록한다. 두 번째 ‘조상의 목소리’는 전통적이면서 근대적 개념에 주목하고 발생되는 사회적 의문을 제3세계의 아픔과 고통으로 답하고 있다. 세 번째 ‘일시적 주권’은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과정 중에 발생되는 ‘이주’와 ‘디아스포라’ 문제에 다양한 미학적 방식으로 접근하였다. 네 번째 확장된 세계관의 반영인 ‘행성의 시간들’은 생태와 환경에 대한 문제들을 통해 전 지구적 한계와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현대인 삶의 비판과 교훈을 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은 ‘5월 광주’를 담아내는 예술적 방식을 역설적으로 보여 줬다. 즉, ‘광주의 5월’을 광주에서만 찾지 않고, 광주를 떠나고 버려야 더 큰 광주를 찾을 수 있다는 문화적 신념으로 읽혀진다. 즉 5월을 버리고 파괴시키고자 노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비엔날레 본전시장 출구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본전시 공간 구성의 경우 예년에 비하여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고 파티션(칸막이)을 최소화하면서 전시장 내부 쾌적함을 높였으며 확 트인 관람 시야까지 확보 하는 등 공간디자인 측면에서 돋보였다. 특히 전시 공학적 연출로 전시 작품의 상호 충돌 최소화와 자유로운 동선은 관람자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주제인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에서 ‘물’은 광륜, 조상, 주권, 행성, 4가지 키워드로 압축하고 은은함, 목소리, 일시적, 시간들 이라는 명사와 관사, 형용사를 통해 ‘부드럽고 여리게’를 나누어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물’은 자연이자 곧 자아를 의미하지만 나아가 ‘5월 광주’는 자연과 함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예술적 접근과 치유방식으로 이해된다. 물론 현대미술이 그러하듯 상징성과 은유로 미학적 이해와 접근은 쉽지 않다. 그래서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시 해설서와 오디오가이드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보다 친절하게 담론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주제와 전시장 마다 소주제별 화두의 연결을 통해 관람객이 전시장 출구를 나갈 때 어떠한 의미를 새길 것인지 예측하면서 관람객에게 보다 깊은 감동을 주는 방향으로 보다 연출 되어야 할 것이다. 미술관은 물론 비엔날레 역시 높은 차원의 사회교육현장이기 때문이다.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관람객 입장을 고려하여 어려운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섬세하고 친절한 장치들이 보다 개발되기를 바라본다.

이번 비엔날레를 보면서 밤과 낮이 뒤바뀌는 국제 업무를 무리 없이 진행시켜온 비엔날레재단 측의 깊은 열정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광주비엔날레는 광주가 국제사회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로 2024년은 창립 30년을 앞에 두고 있다. 지역사회와 한국미술계 앞에 매번 당당하고 의연하게 5월 광주 정신을 다양한 문법의 현대미학으로 담아내는 광주비엔날레에 1995년 창립시켰던 실무자의 한사람으로 감사함을 더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