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캐디피 17만원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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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캐디피 17만원 시대’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3. 07.11(화) 18:09
이용환 논설실장.
“나에게 골프는 볼을 치고 걸어가, 그 볼을 다시 강하게 때리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프로골퍼 앙헬 카브레라는 캐디 출신 골퍼의 전설이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10살 때 골프장 캐디로 들어간 카브레라. 제대로 된 레슨을 단 한번도 받지 못했지만 그는 강한 정신력으로 PGA 투어에서 3승을 올렸다. 2007년 US오픈에서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1타 차로 물리치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가난과 부모 없이 자란 외로움, 캐디 생활의 경험이 내 골프의 원동력.” 이라는 게 카브레라의 회상이다.

캐디는 골퍼의 동반자이면서 멘토다. 경기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캐디의 역할이다. 유능한 캐디는 항상 경기에 집중해야 하고, 골프의 규칙과 코스 사정에도 밝아야 한다. 골퍼가 맨탈을 유지해 안정적으로 플레이에 집중하도록 돕기도 해야 한다. 반대로 캐디의 실수는 골퍼에게 치명적이다. ‘탱크’ 최경주는 미국 진출 초기 매일 술을 마시는 캐디 때문에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영국 골퍼 이언 우스남은 드라이버 수를 확인하지 않은 캐디의 실수로 메이저 우승을 빼앗겼다.

아마추어에서도 캐디의 역할은 중요하다. 특히 세계에서 유일하게 1명의 캐디가 4명의 골퍼를 돕는 우리나라 캐디의 능력은 세계 최강이다. 고충도 크다. 폭염이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도 골퍼와 희로애락을 나눠야 하고 육체적 어려움에 더해 감정 노동의 고충도 감내해야 한다. 비용을 이유로 캐디를 쓰지 않는 골프장이 늘면서 캐디의 역할도 갈수록 줄고 있다. 당장 퍼블릭 골프장에서는 캐디 없이 골프를 하는 노 캐디가 일상이 됐다. 장성 상무대에서는 한때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로봇캐디가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몇 몇 골프장에서 캐디피가 17만 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린 피를 추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은 중단됐지만 장성 상무대에서 운용했던 로봇캐디는 인간 캐디와 똑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인간 캐디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인기를 끌었다. 천천히 경치를 음미하고 동반자와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장점이었다. 가격도 저렴했다. 1892년, 영국 소설가 맥컬러프는 소설 ‘2000년의 골프’에서 ‘로봇이 캐디를 대체하는 로봇캐디의 시대’를 상상했다. ‘캐디피 17만 원의 시대’, 상상으로 만들어진 로봇캐디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