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취재수첩>붕괴된 교실엔 스승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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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전남일보]취재수첩>붕괴된 교실엔 스승이 없다
양가람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3. 07.30(일) 15:57
양가람 기자
“그런 사람이 애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요? 모범생인 우리 아이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만 봐도 교사로서 자격이 의심되네요.”

A씨는 일터에선 수많은 민원에 시달리며 시도때도 없이 허리를 숙여야 하는 서러움을 가졌지만, 자녀 교육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나서는 학부모였다. 자녀가 학교에서 꾸지람을 듣고 오자, A씨는 곧장 학교장을 찾아가 능력없고 정서적 학대를 일삼는 교사가 교단에 남아선 안된다는 민원을 넣었다. ‘악성 민원’에 시달려온 A씨의 ‘자식을 위한 정의로운 행동’이었다.

교실이 붕괴되고 있다. 정확히는 흔들리는 교단에 교사들이 위태롭게 서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엔 스승 대신 교사라는 단어만 남았다. 5월15일이면 학교 곳곳에 울려 퍼지던 ‘스승의 은혜’ 가사말도 이제는 희미하게 기억될 뿐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선생(先生)은 지식과 나이 많은 사람으로, 직업인으로서 교사를 가리키거나 상대를 높이는 존칭이다. 반면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으로, 인간의 도리나 세상 이치를 가르치고 바르게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말한다. 즉, 모든 스승은 선생이지만 모든 선생이 스승으로 존경받진 못한다.

지난 18일 서울 서이초 교사 B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세상의 이목을 교권으로 돌리는 계기가 됐다. 문득 수많은 서이초 교사들을 힘들게 하는 건 어쩌면 날카로운 민원보다 아픔의 무게를 홀로 견뎌내는 괴로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수많은 현장 교사들은 학부모의 민원이 발생하면, 일이 더 커지지 않길 바라는 학교장과 교육청의 외면 속에 오롯히 혼자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세상의 많은 어른들은 사안의 근본 원인을 보려하기 보다는 남탓하길 좋아한다. 그래서 바뀌는 게 없고, 시간이 흐를 수록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자극적인 기사와 거기에 달린 댓글엔 수많은 갈라치기성 혐오가 반복된다. 책임감 없는 직업인으로서의 교사를 욕하거나, 오냐오냐 자라서 예의없는 요즘 아이들과 자기 아이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학부모를 비난한다. 여론에 편승해 정부와 교육청은 애꿎은 학생인권조례를 탓하며 이를 없애려 한다.

혐오는 공감의 결여에서 나온다. 서러운 직장인에서 갑질 학부모가 되는 것처럼, 상황마다 갑과 을이 바뀌는 상황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민원의 악랄함과 이에 대한 대처 부재를 비판하기 앞서 극단적 이기주의를 없애야 하는 이유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 ‘스승의 은혜’ 중 한 소절.

어떤 스승이 될 것인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스승은 미래 세대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삶의 지침 역할을 해야 한다. 교권의 회복은 ‘학생 인권을 누르는’ 것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 시대 모든 어른들이 스승이 되어주는 사회에선 교실이 붕괴될 일도, 교단이 무너질 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