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엄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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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엄석대'
김성수 정치부장
  • 입력 : 2023. 08.30(수) 16:11
김성수 부장
‘엄석대’. 작가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폭압적이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권력자의 표상으로 그려지는 인물이다.

소설 속 엄석대는 시골의 한 초등학교 5학년 2반의 반장이다. 또래들보다 덩치가 큰 엄석대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기미가 보이면 온갖 강압과 교활한 수법을 동원해 응징하며 자신만의 왕국을 구축한다. 담임선생이 반장의 전횡을 비호하자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완전히 제압돼 체제에 순응했고 어떤 아이들은 반장의 측근을 자처한다. 하지만 새로운 담임선생이 엄석대의 ‘권위’를 용납하지 않고 제지하자 숨죽이고 있던 학생들은 너도나도 반장의 비행을 털어놓기에 바빴고 공고해 보이던 그의 왕국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린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난데없이 철 지난 ‘반공·멸공’ 논란으로 나라가 어수선한 형국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인 ‘엄석대’가 소환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수산물 안전’을 담은 영상물까지 제작해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일제히 수산시장을 찾아 ‘회 먹방’에 ‘횟집 수조물 시식’까지 보여줬다.

윤 대통령의 이념 발언이 나오자 여당과 보수진영은 역사인물의 ‘사상검증’에 나서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4·19혁명기념사, 광복절 경축사 등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조작선동하고 있다”며 잇따라 이념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자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느닷없이 자신의 SNS를 통해 “정율성은 우리 국민과 국군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공산주의자”라며 광주시가 추진하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는 육사 내 김좌진·홍범도·이범석·지청천·이회영 5인의 독립 영웅 흉상 철거를 추진했고 논란이 일자 홍범도 흉상만 철거한다니 기가 차다. 한 마디로 ‘이념 과잉’이나 다름없다.

마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학교 풍경 같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3월 기자회견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거론하며 “소설 속 시골 학급의 모습은 최근 국민의힘 모습과 닿아 있다”고 했다. 김병준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경련) 고문도 지난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정치적 이해를 앞세운 윤심을 따라가니까 대통령을 두고 엄석대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을 두고 소설 속 ‘5학년 2반’ 또는 ‘엄석대 반’으로 에둘러 비판한 것이란 해석이 많다. 국민통합을 강조했던 대통령은 이념 갈라치기에 여념이 없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직언도 못하고 대통령 눈치만 보는 형국이다. 이같은 작금의 상황이 ‘엄석대’를 소환한 게 아닌가 씁쓸하다.